취향의 타협

by pahadi

예전에는 수박이나 멜론을 좋아했는데 이제 바나나나 귤을 먹는다. 바나나와 귤을 좋아하냐고 말하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싫어하기보다는 좋아하는 것에 가까우니까. 간단하게 손으로 껍질을 까서 먹으면 되니까 편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이제 맛보다 편한 것이 더 중요하다. (맛도 이만하면 좋고) 물론 누가 준비해준다면 수박이나 멜론이 더 좋지만.


주말마다 넷플릭스로 영화를 본다. 예전에는 영화관의 큰 스크린과 빵빵한 음향이 없으면 영화가 영화가 아닌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렇게 따지다가는 아무것도 못 본다. 코로나19로 영화관에 가기도 부담스럽고 무엇보다 아이를 돌봐야 하니까 영화관에 갈 시간과 여유가 없다. 굳이 아이를 떼놓고 영화관에 가도 영 마음이 불편해 아이가 잠들고 난 후 맘 편하게 넷플릭스로 보는 영화가 더 좋다. 폭신한 내 전용 소파와 완벽한 영화 감상을 위해 미리 준비해 둔 냉장고 속 간식들도 좋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 핑계를 대며 외투를 사러 백화점에 갔다. 쓰윽 돌아보아 마음에 드는 옷이 보이면 들어가 가장 먼저 가격표를 확인한다. 디자인만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내 월급은 너무 작고 귀엽다. 그래서 이 옷은 패스. 취향과 가정경제가 적당히 허락할 수 있는 새로운 옷을 찾아 떠난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거지.


더하기 빼기 없이, 어떤 조건 없이 무엇인가를 좋아하고 즐겼던 때가 언젠였지. 취향이라는 것도 적당한 타협이 필요하다. 뭐 이게 비굴하거나 쩨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다. 위기 상황에서도 자포자기하지 않고 적당한 준최선을 선택하며 내 취향을 유지하는 것도 충분히 멋지다. 단단한 지구 위에 두 다리로 튼튼하게 지탱하며 쌓아가는 취향의 세계는 더 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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