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날들은 기록하고 싶지 않다. 두고두고 남겨둘 이야기도 아니고, 글을 쓰며 담담히 내 우울을 곱씹을 정도로 내공이 높지도 않다. 우울한 날이 늘어간다. 글을 쓰는 날이 줄어든다.
오늘도 글을 써볼까 고민하다가 이내 창을 닫는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 글을 쓰는 대신 글을 읽기로 한다. 책장을 넘기다가 마음에 와닿는 한 구절을 발견한다.
내가 쓴 이 일기는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지나치게 작위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본질 자체가 작위적이다. 그리고 내 영혼의 기록을 꼼꼼히 적는 일 외에 무엇으로 소일거리를 삼을 수 있단 말인가?
-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 중 -
사실 쓴다는 일은 별일 아니다. 잘 쓰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쓰겠다는 거다. 괜히 거창하게 생각했다. 몇 자 적어볼까.
우울의 파도를 타며 시간이 흐르고 기분과 상관없이 어김없이 밤이 온다. 어둠 속에 모든 것이 잠잠해진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도 잠은 온다. 잠은 하루에 마침표를 찍어준다. 늘 그랬듯이 내 우울에도 마침표를 찍어줄 것이다. 일단 자야지. 파도는 언제나, 언젠가 잠잠해지니까.
글로 적고 보니 내 기분도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좋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