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하루

by pahadi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다. 여느 때와 다른 날씨에 여느 때와 다른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친다. 이대로라면 퇴근하고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다가 지쳐 잠들게 뻔하다.


갑자기 배도 아프도 머리도 아픈 것 같다. 차도 좀 손봐야 할 것 같고 은행도 가봐야겠다. 이 핑계, 저 핑계 쥐어짠다. 할 일이 너무 많다. 반차를 써야겠다!


반차를 내고 부릉부릉 시동을 켠다. 갑자기 생긴 자유시간에 쿵쾅쿵쾅 가슴이 벅차오른다. 뭘 하면 신날까. 뭘 할지 심사숙고해보지만 딱히 특별한 일은 없다. 카페에 가서 책이나 읽어야겠다.


자주 가는 카페다. 물론 아이와 함께. 평일 낮 카페는 예상대로 조용했다. 내 옆자리처럼. 따뜻한 카페라테와 스콘을 주문하고 책을 펼친다. 어제 읽던 책인데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자주 먹던 커피와 빵인데 참 맛있다.


두 시간의 짧은 자유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운전할 때 신나면 꼭 일이 생기곤 했는데... 찝찝함이 밀려오지만 신남을 멈출 수 없다. 아차 차차! 이런 사이드 미러를 안 폈네. 초보운전 딱지는 평생 못 뗄 것 같다. 평소라면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을 일도 웃긴 에피소드가 되는 날이다.


특별하진 않지만 새로운 날. 그래서 즐거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특별함이 아니다. 약간의 낯섬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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