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예의

by pahadi

올해 초 코로나19를 앓고 난 뒤 아이는 여러 가지 후유증에 시달렸다. 잦은 기침과 간지럼증, 결막염 그리고 피부염. 특히 두피에 덕지덕지 딱지가 앉았다. 다행히 아이가 두피를 벅벅 긁지는 않는데(몸 이곳저곳은 다 긁지만) 머리카락을 제치고 보면 미관상 보기 안 좋다. 머리를 감길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코로나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져 그런 것이니 시간이 지나면 곧 나아질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딱 맞기를.


아이의 머리카락이 꽤 길었다. 머리를 잘라주러 아이와 함께 미용실에 갔다. 남편이 머리 자르는 곳이라 두어 번 가본 적은 있지만 아이와는 처음이다. 이제 5살이 된 아이는 머리도 곧 잘 자른다. 아이가 처음 머리를 자르던 날엔 눈물과 콧물, 그리고 어른 4명의 진을 다 뺐는데 그것도 어느새 소소한 추억이 되었다. (동영상은 남았다!)


아이는 높은 의자에 껑충 올라앉았다. 미용사는 아이에게 앞치마를 둘러주며 나에게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물어봤다. 늘 그렇듯이 "그냥 깔끔하게 잘라주세요"라고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의 머리를 이리저리 살피던 미용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어머! 이게 뭐예요? 얘 두피가 왜 이래요? 무슨 병이에요?"


그 소리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이는 이 모든 소리를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 분명 놀라서 그러신 거겠지만 너무 예의가 없다. 만약 진짜 큰 병이라면 그건 진짜 실례 아닌가?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최대한 건조하게 말했다. "코로나로 면역력이 떨어져 일시적으로 그런 거래요." 미용사는 대답할 생각도 없고, 인상을 펼 생각도 없어 보인다. 정말 우리가 무슨 전염병 환자라도 된 기분이다. 내가 조금 더 강단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 순간 아이를 데리고 나왔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됐다.


때로는 모르는 척해주는 게 최상의 예의이다. 놀람, 호기심, 혐오 모두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모든 감정을 가감 없이 표출하며 사는 건 자연스럽지 못하다. 상대방의 아픔과 슬픔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할 거라면 조심스레 덮어주는 것이 더 쉽고 더 훌륭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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