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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파동

by pahadi

이유미 작가의 <편애하는 문장들>을 읽었다. 작가가 좋아하는 책의 구절과 작가의 일상을 연결한 에세이다. 그중 박혜윤 작가의 <숲 속의 자본주의자>라는 책에서 인용한 구절이 참 마음이 들었다. 기억해 두고 싶어서 수첩에 사각사각 적어두었다. 지금 읽는 책을 다 읽으면 꼭 읽어봐야지.


이런 마음으로 포기했다. '있는 것을 챙기자.' 추수가 끝난 황량한 논에 떨어진 쭉정이 벼 이삭을 줍는 심정으로 별 볼 일 없지만 내 마음에 작은 기쁨을 주는 일, 내가 좋아하는 소소한 것들을 했다. (중량) 이것 역시 '열심히'는 아니고 충분히 자고, 웃고, 떠든 다음 남는 시간에만. 그랬더니 그게 모여서 꽤 그럴싸한 나만의 무언가가 생겼다. - 박혜윤 <숲 속의 자본주의자> -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인터넷 서점에서 <숲 속의 자본주의자>를 주문했다. 오전에 주문했는데 그날 오후에 도착했다. 세상 참 좋아졌다.


신문기자였던 박혜윤 작가는 미국 시골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억지로 돈 버는 삶을 내려놓고 정기적인 입금 노동 없이도 행복한 삶을 꿈꾼다. 자고 싶을 때 자고, 하고 싶은 때 한다는 작가의 평화로운 일상에 여유와 풍요로움이 가득하다. 이 책에는 내가 적어두었던 구절 말고도 훌륭한 문장들이 가득했다. 곧바로 인생 책 리스트에 등극했다.


옛날부터 내 머릿속에 울리던 소리가 있다. '이렇게까지 해야 돼?' 살다 보면 이렇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직업적으로 좀 더 크게 성공할 것 같은데, 하는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이 있다. 문제는 그것을 위해 치러야 하는 희생도 눈에 잘 보였다는 것. 일상도 포기하고, 집념을 불태우고, 내 취향이나 고집도 내려놓고, 귀찮은 일도 감수해야 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저 소리가 들려왔고, 그때마다 나는 아주 잘 포기했다. 기꺼이, 즐겁기, 순전히 포기했다. 그것이 내 한계라고, 내 문제라고 인정해도 괴롭거나 후회스럽지 않았다. - 박혜윤 <숲 속의 자본주의자> -


이 책에 뇌의 가소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뇌는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연결된 회로로 우리는

수많은 생각의 회로를 선택할 수 있다.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작가는 질 볼트 테일러의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를 인용했다.


뇌졸중을 통해 내가 배운 최고의 교훈이라면 감정을 몸으로 느끼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중략) 감정이 내 몸에 계속 남아있게 할지, 아니면 내 몸에서 곧장 흘러 나가게 해야 하는지 판단할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략) 왼쪽 뇌의 힘이 점차 강해지면서 내 감정이나 상황을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이나 외적 사건 탓으로 돌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나와 나의 뇌 말고는 나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게 만들 사람은 없었다. 외부의 그 무엇도 내 마음의 평화를 앗아갈 수 없었다. 그것은 온전히 나의 문제였다. 내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통제할 수는 없지만, 내 경험을 어떻게 지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내게 달려 있었다. - 질 볼트 테일러의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다음 책은 질 볼트 테일러의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다. 미리 주문해 책상 위에 올려두니 든든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연속적으로 아름다운 파동을 만들어낸다. '좋아하다'는 새로운 '좋아하다'로 이어지고 나의 세계는 더 아름답고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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