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딩크를 원했다. 나는 남편에게 이건 사기 결혼이라고 말했다. 결혼 전, 우리는 2세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 하나쯤은 낳아 기르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녀계획이 논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워낙 완강했던 터라 결국 남편이 져주었다. 반 강요, 반 타협으로 우리는 아이를 낳았다. 조리원에서 3일째 되던 날까지 남편은 아이를 안아보지 않았다. 작디작은 아이를 어떻게 안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참 괘씸하고 서운한 일이었다. 성화에 못 이겨 남편은 4일 만에 아이를 안았다.
육아휴직을 했던 터라 육아는 자연스레 내 몫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내 인생에서 겪은 일 중 가장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었다. 수많은 육아 레시피들이 존재했지만 그건 교과서에나 있는 말이었다. 정답은 없었다. 왜 우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때때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적당한 해결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세상이 시키는 대로만 살아온 내게 이런 불확실성은 너무 큰 스트레스였다. 임신과 육아로 달라진 외모, 잃어버린 내 일상을 원망하며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이를 갈았다.
그런 남편이 아이 때문에 산다고, 말하고 우리는 곧 네 식구가 된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친구들은 모두 둘째 계획을 말했지만 확고히 외동만을 외쳤던 나만 둘째를 가졌다. 인생은 정말 알 수가 없다.
딩크로 살았다면 어땠을까? 최소한의 노동으로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 떠날 수 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당연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동시에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자유롭고 여유로웠을지 모르는 또 다른 인생을 상상하다 생각을 멈췄다. 지나간 과거에 '만약'이란 없으니까.
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한 우리 집을 선택했다. 그리고 자유 대신 의무와 책임감을 얻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정확하게는 후회해도 어쩔 수 없다. 앞으로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하나의 선택이 수많은 포기를 만들겠지만 어떤 선택이든 최고의 선택이라고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