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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온도 차이 - 육아

by pahadi

남편이 어학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말했다. 회사 승진에 필요하다고. 온라인 강의를 들을까, 학원을 다닐까 고민하는 남편 앞에서 썩 웃음이 나지 않았다. 회사 다니면서 공부까지 하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남편이 승진을 한다면 우리 가족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응원은 커녕 샘이 났다. 자유롭게 미래를 이야기하는 남편이 미웠다.


아이를 낳고부터 나의 일 순위는 언제나 아이를 돌보는 일이었다. 아이 때문 직장을 그만둘까 고민하는 내게 남편의 고민이 너무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아이를 이 순위로 둘 수 있는 남편이 부러웠다. 그리고 그만큼이 내 책임이 되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


언제부턴가 나는 나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다. 아이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었다. 자격증을 따야 한다거나, 취미를 가지고 싶다거나, 운동을 하고 싶다는 건 안드로메다에서나 꿈꿀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하소연은 늘어놓으면 남편은 '하고 싶으면 해'라고 말하지만 '어떻게' 하라는 걸까?


아이의 새 유치원을 고민하는 건 내 몫이다. 남편은 아무 데나 보내면 된다고 말하는데 그 '아무 데나'가 과연 어딜까. 아이가 아프면 이리저리 부탁을 해야 되는 것도 내 몫이다. 남편의 역할은 감사 인사뿐이다.


굳이 나누자면 남편은 가정적인 편에 속한다. 하지만 왜 아이에 관해서는 늘 내가 총대를 메야하는 것일까. 남편은 왜 언제나 한걸음 물러서 있는 것일까. 최전방에 엄마라는 사람이 있는 한 아빠의 세계는 육아라는 전쟁 속에서도 평화롭다.


나는 조금의 시간과 에너지라도 싹싹 모아 아이를 위해 무엇인가 하려고 하지만 남편은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가 있을 때 아이를 위해 무엇인가 하려고 한다. 나는 아이를 위해 회사를 포기하려고 하지만 남편은 아이를 위해 회사를 더 열심히 다닌다고 말한다. 우린 서로 대화와 이해 없이 당연하게 그렇게 지내왔다.


분명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서 경력을 쌓고 결혼할 때까지 우린 같은 입장이었는데 너무도 달라져버렸다. 그리고 도무지 바뀔 것 같지 않다.


이것도 단지 나의 선택의 결과일까. 나는 이 순간까지 예상하고 받아들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어야 했을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랬더라면 어디서부터 달라졌을까. 심난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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