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홍대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 북적북적 사람 구경이 얼마만인지. 편안한 옷차림들이 눈에 띄었다. 내가 대학생 시절에는 하이힐과 스키니진이 유행했다. 저녁이 되면 다리에 바지 바느질 자국 그대로 남을 만큼 딱 붙는 스키니진과 발바닥에 불이 나도 포기할 수 없었던 하이힐. 하이힐 때문에 급하게 사 신었던 슬리퍼가 몇 개인지. 고통이 멋이었던 그 시절이 지나갔다. 굽 낮은 신발이나 운동화, 긴치마나 넉넉한 바지, 티셔츠 차림의 젊은이들. 참 보기 좋다. 입기에도 보기에도 편하다.
한 때는 뽕이 잔뜩 들은 속옷에 집착하기도 했었는데 왜 그랬을까. 조금이라도 날씬해 보이려고 꽉 끼는 보정속옷을 입은 날이면 여지없이 체하곤 했다. 하이힐 때문에 물리치료를 받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짧은 치마를 입은 날엔 계단 오르기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꾸역꾸역 그것을 입었다.
돌이켜보면 예뻐서 입었는지도 의문이다. 그냥 유행이니까, 남들이 다 그렇게 입으니까 아무 생각 없이 따라 입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만큼 어떻게 입어야 할지도 중요한 문제다. T.P.O(경우에 따라서 옷을 입는 것)만큼 나에게 맞는 옷차림도 고민이 필요하다.
나는 소화기관이 약해서 옥죄지 않는 넉넉한 상의를 입는다. 여름에도 에어컨 바람을 좋아하지 않아서 긴 하의를 입고 카디건을 챙겨 다닌다. 어디서나 양반다리로 앉기를 좋아하니 짧은 하의는 사절이다. 발목이 아파서 엑스레이를 찍어봤더니 발목에 뼈가 남들보다 하나 더 있단다. 그래서 무리가 되지 않도록 낮은 굽에 편한 신발을 신는다. 발에 열이 많이 두꺼운 양말보다 맨발이나 얇은 면양말이 좋다. 이런 이유로 옷장엔 거기서 거기인 옷들 뿐이지만 뭐 어떠랴. 덥고 추울 때 신체를 보호해주고, 풍기문란 죄에 걸리지 않고, 나와 다른 사람에게 모두 무해한 옷차림이면 충분한 거지.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무엇을 읽을지, 무엇을 할지 이 사소한 문제들이 오늘 내가 고민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