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이 지나고 매미 우는 요란한 여름도 가고 울긋불긋 물든 가을 지나쳐 겨울이 왔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스치는 이 계절은 어쩐지 쓸쓸하다. 올해는 눈 소식도 드물어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려앉은 풍경도 볼 일이 없을 것 같다.
미세먼지와 추위로 꽁꽁 닫힌 창문들은 열릴 줄 모르고 거리에서 재잘대는 소리도 종적을 감췄다. 길고양이들은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질 않고 갈 줄 모르는 나무들만 헐벗은 채 외롭게 서 있다. 모두들 한껏 웅크린 채 눈길 한 번 돌리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다.
늘 혼자였어도 더 혼자인 것 같은 이 계절. 그래서 난 겨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추위보다 더위에 강해서일 수도 있고, 꽃을 좋아해서 일수도 있고, 가벼운 옷차림이 좋아서일 수도 있고 이유는 많다. 하지만 봄이 가고 여름도 가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는 걸 누가 막을 수 있나. 몇십 년을 함께 해도 낯설기만 한 이 계절과 친해지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 중이다.
추운 겨울, 집과 더 친밀해지는 시간이다. 따뜻한 방이 더 고마운 건 추운 겨울 덕분이리라. 겨울에는 자연스레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인 게 싫은 나는 도서관이라든지 카페라든지 군중 속의 고독을 즐긴다. 백색소음은 있어야 안심이 된다. 하지만 겨울만은 예외다. 귀찮음이 모든 감성을 이겨버리기 때문이다. 덕분에 차분한 시간들이 이어진다. 혼자 있는 연습하기 딱 좋은 계절.
외출을 위해 정신없이 준비하는 대신 내 몸을 가장 편하게 가려줄 수 있는 옷을 입는다. 그리고 나만의 BGM을 선곡한다. 카페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 대신 무엇을 들을까 고민하는 게 귀찮기는 하지만 만족감은 더 크다. 그리고 따뜻한 커피를 준비한다. 커피 만들기 귀찮은 날은 향긋한 차도 좋다. 그리고 조용히 상념에 빠져든다. 이 지구에, 이 우주에 나만 혼자 있는 기분. 가끔은 이것도 꽤 괜찮네.
겨울에는 외출이 줄어든 대신 스스로 할 일이 많아진다. 외식 대신에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다. 주문만 하면 내 앞에 따끈한 요리가 준비되는 대신에 무엇을 만들까 고민부터 재료를 구입하고 손질하고 레시피를 신경 써가며 불 앞에서 음식을 뒤적거리며 만들어야 하는 일. 귀찮지만 겨울을 배경으로 따뜻한 불 앞에서 요리하는 일은 어쩐지 동화의 한 장면 같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 위로 날아가는 수증기들이 집 안에 퍼지고 우리 집은 모두를 지켜주는 따뜻한 요새가 된다. 내가 만든 요리가 일류는 아니지만 최소한 내 입에는 딱 맞다. 음식을 먹고 실망한 일은 없다. 그저 불러오는 배에 나른함을 즐기면 된다. 설거지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겨울의 시간은 느리게 가는 법이다. 그러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해도 괜찮다.
그리고 저녁에는 따뜻한 물을 받아 목욕을 한다. 겨울에 가장 좋은 것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목욕이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차가운 날씨로 한껏 움츠러든 덕에 따뜻한 물에 몸을 목이는 일이 더 위로가 된다. 물속에서 허우적대다 보면 머릿속 생각들이 눈처럼 녹아버린다. 한여름 습기 가득한 욕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쾌함이 있다. 이런 걸 바로 '시-원하다'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 계절에만 허락된 무겁디 무거운 바디로션을 한껏 넉넉히 바른다. 나만을 위한 보호막을 두른 것처럼 든든하다.
이 쓸쓸한 계절도 빠르게 지나고 있다. 그리고 곧 봄이 오겠지. 겨우내 꼭꼭 숨어있던 사람들이 한데 몰려나와 꽃피는 봄을 즐기겠지. 그리고 나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또 겨울이 올 것이다. 계절은 내가 좋다고, 싫다고 말할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때의 맛을 즐기면 되는 것. 올해 겨울은 유난히 따뜻하다고 한다. 그래 봤자 겨울이지만 눈이 덜 오는 것은 조금 아쉽다. 봄은 봄다워야 여름은 여름다워야 가을은 가을다워야 겨울을 겨울다워야 제맛인데 말이다. 그러니 겨울아 더 춥고 더 외로워라. 그리고 언제나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