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코 풀기에 성공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겨울은 육아의 암흑기다. 추운 날씨 때문에 놀이터에도 못 가고 불청객 감기는 시도 때도 찾아온다. 가뜩이나 추운 게 질색인데 아이를 키우며 겨울이 더 싫어졌다. 아이는 감기에 아주 잘 걸린다. 겨울에 아이의 상태는 세 가지 중 하나이다. 콧물이 나던지, 콧물이 나서 약을 먹던지, 콧물이 나고 열이 나서 약을 먹던지. 그러니 내가 겨울이 지긋지긋해지지 않고 배기겠는가.
이 놈이 콧물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짜증이 나는데 더 최악인 점은 중이염으로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를 못 푸는 아이들은 중이염에 더 자주 걸린다. 중이염이 반복되면 청력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고 아주 드물긴 하지만 뇌수막염 같은 무서운 합병증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니 아무리 지긋지긋해도 가만 둘 수도 없다.
코를 못 푸는 아이는 콧물을 제거하기 위해 콧물 흡입기를 이용한다. 그런데 이게 또 소리가 참 우렁차다. 소리에 놀란 아이가 코 빼기를 거부하고 다급해진 엄마는 온갖 협상 카드를 내민다. 초콜릿에서부터 유튜브까지. 눈앞의 유혹에 약해진 아이가 다시 큰 마음을 먹고 도오오오전! 을 외치지만 구석기 때부터 DNA에 켜켜이 새겨진 생존 본능은 이 우렁찬 위협을 순순히 허락하지 않는다. 마음과 달리 거센 저항이 이어진다. 팔다리를 강제로 잡아보지만 어찌나 힘이 센지. 코를 빼겠다는 나의 의지는 코를 빼지 않겠다는 아이의 절박함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것이 없어 이 전쟁은 대부분은 나의 패배로 끝이 난다.
이런 반복적인 비극에 한 줄기 빛이 찾아왔으니 바로 아이가 스스로 코를 풀 수 있게 된 것이다. 겨울이 찾아오는 자연의 섭리를 막을 수 없고, 유난히 코감기에 잘 걸리는 내 아이를 딴 아이로 바꿀 수는 없지만 코를 풀 수 있게 된 것이다! 드디어 이 엄청난 기술을 드디어 습득한 것이다. 대견하고 또 대견하다.
코 풀기가 엄청난 기술이라는 비밀을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앉고, 걷고, 말하고 코를 풀기까지 꼬박 4년 반이 걸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사소한 일들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 모두 코 풀기엔 자신 있잖아요. 우리가 이렇게 엄청난 기술의 보유자랍니다. 아이가 앉고, 걷고, 말하고, 코를 풀기까지의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기억한다. 역시 인생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은 매 순간 끊임없이 노력한 끝에 얻어진 것들이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온 거라니까요!
아이의 성장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며 나와 너를 더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충분히 대단해요. 우리는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