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제주도로 여름휴가를 간다. 짧으면 일주일, 길면 열흘. 해가 갈수록 제주도가 한산해지는 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말한다. 제주도 갈 돈이면 해외여행을 가겠다고. 검은 돌들이 뒷방 늙은이처럼 서글프게 느껴진다. 그래도 나는 네가 좋아. 금방 갈게. 곧 만나!
아이가 어리니 한 시간 비행도 쉽지 않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길을 떠났나 후회가 밀려올 때쯤 하얀 구름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 드디어 도착. 역시나 떠난 일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검은 돌 사이로 파도가 부서진다. 검은 돌과 푸른 바다의 대비가 마음까지 단순하게 만들어준다. 그래. 이 풍경 안에 우리가 있어. 더 이상 무얼 바라겠어.
여행의 대부분은 바다에서 보내기로 했다. 해마다 찾는 바다가 매번 내가 생각하는 그 모습 그대로라서 참 좋다. 하루 종일 바다를 바라본다.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바다이기에 아무리 바라보아도 지루하지 않다.
이른 아침 햇살에 찰랑이던 바닷물이 해님과 술래잡기라도 하듯이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난다. 군데군데 남겨진 물웅덩이는 우리만의 수영장이 된다. 첨벙첨벙. 아이를 위해 모래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는데 내가 더 신이 났다. 이유도 목적도 없다. 그저 판다. 깊이깊이. 그저 판다. 열심히.
파다 보니 깨나 깊어졌다. 누군가 이 구덩이에 다리라도 삐끗하면 어쩌나 아찔한 생각에 다시 구덩이를 채운다. 차곡차곡. 토닥토닥. 모래를 파고, 다시 구덩이를 채우고, 슬슬 몸에 열이 오르면 시원한 바다에 몸을 담그기를 반복한다. 알찬 하루다. 뿌듯한 하루다.
어느새 파란 하늘이 분홍빛, 노란빛, 보랏빛으로 물든다. 경계도 없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빛깔들에 마음까지 물들면 이제 진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내일이 또 있어 정말 다행이다.
오랜 친구는 이래서 좋다. 익숙하니까. 오랜만에 보는 친구는 이래서 좋다. 반가우니까. 나의 마음의 고향이 있다면 바로 여기일 것이다. 내일 다시 만나, 바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