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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hadi Aug 17. 2024

여행기 - 독립서점

여행지에 오면 꼭 독립서점에 들른다. 책을 사서 첫 번째 장에 날짜와 장소를 적고 여행 내내 읽는다. 그리고 여행의 추억을 담아 함께 돌아온다. 이것이 내가 여행을 즐기는 방법, 여행을 기억하는 방법이다.     


독립서점에 들르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곳에서는 주류가 아닌 것들도 주류 대접을 받는다. 대형서점이라면 구석 책장이나 창고 신세를 면치 못할 책들도 당당히 표지를 드러내며 메인 선반에서 자태를 뽐낸다. 나 역시 비주류니까 이런 비주류에 마음을 끌리는 게 당연하다. 독립서점에서만 만날 수 있는 책들도 있다.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존재를 만난다는 것에서 운명이라든가, 기적이라든가... 이런 것을 느낀다면 너무 오버일까? 아무튼 그래서 나는 독립서점이 좋다.     


소도시나 시골에는 대형서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해타산이 중요한 대형서점이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 척박한 상황에서도 독립 서점들의 잔가지는 이어진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이렇게 위대하다. 그것은 +,-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누군가의 취향과 애정이 새겨진 작은 아지트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아무리 꽁꽁 숨어있을지라도. 그런 작지만 큰 이야기들이 스며있으니 그곳을 사랑할 수밖에. 사랑하니 찾아갈 수밖에.     


낯선 여행지에서(때론 익숙한) 만난 낯선 책은(때론 익숙한) 나를 가보지 못한 세계로 데려간다. 낯선 공간과 낯선 공기 속에서 만난 검은 활자들은 우리 동네 단골 카페에서 만나는 활자들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사실 가장 다른 건 나의 태도일 것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책들은 나의 여행을 흡사 우주여행이라도 새롭고 낯설게 만들어준다. 거대한 비행기나 우주선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일을 작은 책도 가뿐히 해낸다.

  

독립 서점에서는 잊혔던 책을 만나기도 하고, 처음 보는 을 만나기도 한다. 어떤 만남이든 반가운 만남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개의 독립서점에 방문했다. 두 권의 책을 만나고 읽었다. 내 인생에 두 개의 추억 보따리가 생겼다.     

 

첫 번째 방문한 독립서점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아직 풋내가 가시지 않은 공간에 쭈뼛쭈뼛 신입교사 같은 책방지기와 성글성글 신입생 같은 책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익숙한 작가와 낯선 작가의 이름, 익숙한 제목들과 낯선 제목들을 눈으로 따라 읽다가 멈칫. 익숙한 작가의 낯선 책 앞에 멈추어 섰다. ‘오! 안녕. 오늘은 너구나!’ [달려라 아비]는 9편의 단편이 수록된 김애란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내가 아는 김애란 작가보다 훨씬 더 어린 김애란 작가는 어떤 이야기들을 풀어놓았을까. 잊혔던 그 이름이 다시 반짝반짝 빛을 낸다. 이 여행이 아니었다면 우리 언제 다시 볼 수 있었을까. 너무도 고맙고 반가운 재회다.


두 번째 방문한 독립서점은 지난여름에도 왔던 곳이다. 책장 배치가 조금 바뀐 것 말고는 대부분이 그대로다. 그래서 더 반가운 곳. 이 서점의 가장 큰 장점은 책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바심 내지 않고 넉넉하게 책을 고를 수 다. 두 권이 최종 후보로 올랐다. 한 권은 좋아하는 작가의 책, 다른 한 권은 낯선 작가의 책. 여행지에서는 모험을 최소화하는 게 현명한데 왠지 이 낯설고 작은 노란 책에 마음이 끌린다. 그렇게 만난 이향규 작가의 [사물에 대해 쓰려했지만]. 서점에서 쓰윽 살펴본 바에 따르면 작가의 남편은 꽤 젊은 나이에 파킨슨 병을 앓고 있다. 슬픈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곳곳에 녹아있는 슬픔들을 부지런히 피해 가기 바쁜데 왜 이 책을 골랐는지, 읽어보니 알겠다. 이 책은 슬픈 이야기가 아니다. 따뜻한 이야기다. 다정한 이야기다. 이런 게 또 한 명의 좋은 작가를 만났다. 또 하나의 따뜻하고 다정한 시선을 만났다. 이 모든 게 지금, 여기 아니면 어떻게 가능했을까.


거울 속 하나씩 늘어가는 주름살을 볼 때마다 슬퍼지는데 책장 속 하나씩 늘어가는 책들을 볼 때마다 뿌듯해진다. 내 나이가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나이 든다는 건 서글픈 점도 있겠지만 분명 보람찬 점이 더 많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너만의 여행답게 너만의 인생을 응원한다고 작은 책이 크게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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