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에코백

당신의 아무튼은 무엇인가요?

by pahadi


<아무튼, 계속>, <아무튼, 방콕>, <아무튼, 발레>, <아무튼, 술>, <아무튼, 양말>...

'아무튼'시리즈는 내 삶의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한 가지 담은 에세이로 여러 작가들이 시리즈로 출판하고 있다. 술, 방콕 등이야 얼마든지 에세이 주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양말로도 멋진 책 한 권이 완성될 수 있다니. 역시 세상은 넓고 책은 많고 취향은 다양하다. <아무튼, 양말>을 재미있게 읽고 나니 새삼 낡고 빛바랜 내 양말이 부끄러워진다. 이제 양말에 신경 좀 써야 하나. 아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게 아니고... 아무튼, 나의 '아무튼'은 무엇일까?


아무튼은 '의견이나 일의 성질, 형편, 상태 따위가 어떻게 되어 있든'이라는 뜻을 가진 부사다. 상황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도 아무튼 시리즈의 작가들 못지않게 좋아하는 것이 많다. 커피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한다. 쇼핑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물건들이 내 방, 아니, 내 집 가득하다. 이 중에서 나의 '아무튼'을 찾아보자면... 바로! 가방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에코백이다.


'대학 가면 살 다 빠져'만 믿으며 교복과 체육복으로 고등학교 3년을 견뎌내고 드디어 대학교에 입학했다. 입학과 동시에 살은 빠지지 않았지만 살로도 막을 수 없는 나만의 패션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해한 핫핑크 코트를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던 그때부터 나의 가방앓이는 시작됐다. 옷이나 신발은 용돈이나 아르바이트로 살 수 있었지만 가방은 아무래도 너무 비쌌다. 결핍은 갈망을 낳고 갈망은 가방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 당연히 첫 월급으로 비싼 가방을 샀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그 보라색 가방을 시작으로 100개를 사야 해서 bag이라며 열심히 가방을 사 모았다. 그리고 그 집착의 종착점은 허무하게도 에코백이었다.


내가 외출할 때 휴대폰과 카드 하나면 충분한 사람이라는 것을, 패션을 위해 필요 없는 가방을 들고 다닐 만큼 대인배가 아니라는 것을 집에 쌓여 있거나 버려지거나 팔려간 나의 가방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것도 엄청난 가격을 지불하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방은 신상 명품백이었지만 매일 들고 다니는 것은 편안한 에코백이었다. 들고 다니지 않는 가방은 읽히지 않는 글처럼 정말 쓸모가 없다. 먼지만 쌓여가는 가방들이 속상하지만 이미 나의 마음은 에코백으로 돌아서버렸다.


에코백의 에코는 당연히 친환경을 의미한다. 동물 가죽이나 화학적 처리를 거친 인조 가죽 대신 면이나 캔버스 같이 분해가 잘 되는 재료로 만들어진다. 우리가 늘 사용해 오던 천가방이 가죽과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에코백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장바구니로 폄하되던 천가방이 에코백으로 네이밍 된 후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환경보호과 패션 아이템 같은 이유를 떠나서 에코백은 그 자체로도 매력이 넘친다. 첫 번째 매력은 가볍다는 것. 필요한 것을 담다 보면 가죽 가방의 무게는 10kg을 훌쩍 넘는다. 무거운 가방도 들고 다니다 보면 적응되지만 집에 오면 후유증이 몰려온다. 무거운 몸뚱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도 지치는데 굳이 무거운 가방까지 보태고 싶지 않다. 에코백의 무게는 크기나 장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가장 기본 디자인이라면 100g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캔버스보다 면이 더 가벼운데 내가 여행 때마다 들고 가는 면 20수 에코백은 크기도 작아 20g도 안 된다. 이 정도 무게라면 가방 무게를 줄이기 위해 1등으로 빼두던 책도 슬그머니 한 차리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매력은 접을 수 있다는 것. 플렉시블 스마트폰에 이어 돌돌 말 수 있는 롤러블 스마트폰이 특허를 땄다고 한다. 그 작은 스마트폰도 휴대하기 편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으니 커다란 가방이야 오죽하겠는가. 접을 수 있다는 것은 휴대가 간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에코백은 세컨드 백으로 딱이다. 쇼핑의 순간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른다. 에코백은 무엇이든 담을 수 있으니 편하게 쇼핑하라고 당신을 응원한다. 그리고 오늘의 과소비를 홍보하기라도 하듯 주렁주렁 매달린 쇼핑백들 대신 에코백을 사용하면 집으로 돌아가는 당신의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질 것이다. 일회용품 사용 규제로 비닐봉지의 몸 값이 100원을 호가하는 요즘 에코백으로 환경도 보호하고 당신의 새는 돈도 잘 막아보자.


세 번째 매력은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 심지어 사은품으로 제공되는 에코백도 많다. 내가 자주 쓰는 에코백은 5000원과 13900원을 주고 구매했다. 그중 13900원짜리는 19900원일 때부터 가지고 싶었는데 비싸서 사지 않다가 세일하자마자 구매한 것이다. 물론 몇십만 원짜리 에코백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에코백은 저렴한 가격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구매할 수 있다. 그리고 네 번째 매력은 깨끗하게 빨 수 있다는 것. 천으로 만들어졌으니 세탁기에 돌려도 된다. 자주 빨면 내구성이 떨어지지만 가격도 저렴하니 부담 없이 빤다. 빨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자유와 여유를 준다. 에코백을 턱턱 바닥에 내려놓을 수도 있고 자리가 더럽거나 바닥에 앉을 일이 생기면 에코백을 깔고 앉기도 한다. 가끔은 손에 묻은 걸 가방에 쓱 닦을 때도 있고 누군가 내 가방에 커피를 흘려도 그나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 에코백은 가방, 돗자리, 손수건 1인 3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다섯 번째는 만들어 쓸 수 있다는 것. 정규 교육과정을 12년 마친 사람이라면 바느질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추억의 쿠션 만들기, 팔토시 만들기 등등 천하고 바느질 도구만 있다면 가방도 만들어 쓸 수 있다. 물론 쓸만하게 만들려면 재봉틀이 낫지만 말이다. 나도 내가 만든 에코백을 몇 개 쓰고 있는데 만들어 쓰는 것의 최대 강점은 나의 취향과 요구에 맞춰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다니려니 크로스백이나 숄더백 조차 거추장스러워 가벼운 힙색이 필요했다. 하지만 원피스를 주로 입는 나에게 힙색은 너무 난센스였다. 결국 꽃무늬 원단으로 리본이 달린 힙색을 만들어 쓰고 있다. 보자기로 둘둘 말아 어깨와 허리에 맨 책보따리가 연상되고 누군가는 6남매는 잘 있냐고 물어보지만 나에게는 안성맞춤인 가방이다. 내가 좋아하는 꽃무늬에 가볍고 몸에 착 붙어 활동성까지 겸비해 요새 가장 많이 들고 다닌다.


정말 회사에 출근하기 싫은 날, 나는 가방을 아예 두고 간다. 동네 앞 산책 가듯 나를 속이며 일단 출근이라도 하면 어떻게든 하루는 흘러간다. 빈 손으로 출근하는 일을 상상도 못 할 사람들은 무거운 가방 대신 가벼운 에코백을 들고 가보는 것도 좋겠다. 삶의 무게가 아주 조금은 가벼워질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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