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택에 살고 싶다. 한옥이어도 좋고 양옥이어도 좋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극 현실주의자인 남편은 주택에 살면 할 일이 엄청나다, 벌레도 많다, 치안도 걱정이다 등등의 이유를 들어 나의 꿈에 제동을 걸지만 뭐, 상관없다. 당장 주택에 살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사실 아주 머나먼 날의 일일 것 같다.
요즘에는 대부분 아파트나 빌라 같은 공동주택에 산다. 나도 아파트에 살고 있다. 관리비만 내면 깨끗한 아파트 단지와 층계,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고 관리 사무소에서 택배도 맡아준다. 분리수거장도 항상 깨끗하고 멀리 가지 않아도 아파트 상가들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단점은 아파트의 밤이 너무 빨리 온다는 것이다. 내 집이지만 나만의 공간은 아니다. 우리 집 바닥은 어떤 집의 천장이 되고 우리 집 천정은 다른 집의 바닥이 된다. 말 그대로 공동주택이기 때문에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으려면 항상 조심해야 한다. 나는 우리 집이 언제든지 자유로운 공간이면 좋겠다. 물론 이웃들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내 취미 목록에 재봉틀이 있다. 무엇이든 충동적으로 시작하고 쉽게 그만두는 나지만 그래도 재봉틀을 꽤 오래 했다. 기본 기능만 갖춘 재봉틀을 쓰다가 아기 옷을 만들겠다는 호기로운 생각으로 비싼 재봉틀과 오버로크 기계까지 장만했다. 하지만 만삭일 때는 몸이 무거워서 못하고 아기가 태어난 후에는 잠잘 시간도 부족한데 무슨 재봉틀을 하겠다는 말인가. 몰라도 너무 몰랐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은 준이가 잠들고 난 후인데 이때 재봉틀을 돌리는 건 상식 밖의 일이다. 결국 새 재봉틀은 몸도 풀리기 전에 먼지만 쌓여가는 중이다. 내가 주택에 살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재봉틀이다. 더 깊게 의미 부여를 하자면 내 집을 언제라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한다.
내 주택 타령을 들으면 남편은 시골로 이사 가자는 현답을 내놓는다. (경제적인 이유로) 시골에 가면 내가 원하는 마당 딸린 2층 집에 살 수 있다고. 하지만 20년 동안 촌년으로 살다가 겨우 서울에 입성한 나에게 서울은 너무나 매력적인 곳이다. 언제든지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 곳곳에 있는 맛집과 기분마다 골라갈 수 있는 카페들, 그리고 내가 우리 동네에서 가장 좋아하는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서관과 대형서점. 이것이 없이는 무슨 재미로 산단 말인가. 나는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는데!
고로 내 욕심을 정리하자면 도심 한복판에 마당 딸린 2층 집을 가지고 싶다는 것인데... 나 같은 서민에게는 로또가 되어도 힘든 일이다. 땅이 있다면 최대로 높이 올려서 건물주가 되어야 하는 세상에서 내 꿈은 이루어질까? 과연 내가 땅을 사고 건물을 지을 돈이 생겨도 꼬마 빌딩 대신 단독주택을 지을까 모르겠다. 역시 자유에는 돈이 필요하다.
그래도 상상하는 데 돈이 드랴. 내 머릿속에는 언제나 내가 꿈꾸는 공간이 있다. 변덕 부린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으니 이 방을 넓혔다가 저 방에 테라스를 달았다 뗐다가 요란을 떨어본다. 단순히 내 명의로 된 서류상 내 집 마련이 아니라 내 취향과 삶의 목적을 담아 어떤 공간을 마련할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평생 일하고 모은 돈으로 네모난 집 하나 마련한다고 생각하면 서글프니까.
집은 이층 집으로 짓고 옆에 창고도 작게 있으면 좋겠다. 나는 잡동사니들이 너무 많으니까 창고가 꼭 필요하다. 벽돌집은 아니고 벽은 아이보리색, 지붕은 붉은색으로 칠한다. 마당에는 나무랑 꽃을 심을 거고 한쪽에는 텃밭도 만들면 좋겠다. 간단한 채소는 길러 먹으면 좋겠다. 꽃은 계절마다 잘 크는 것으로 골라 심되 작약과 동백나무, 금귤 나무는 꼭 심고 싶다. 야외 테이블과 의자보다는 평상 하나가 좋을 것 같다. 1층은 가족과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2층 가장 큰 방은 내 방으로 해야지. 내 방의 세 벽은 모두 책상으로 두를 것이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재봉틀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림 그리고 나머지 책상에서는 글을 쓰고 싶다. 마지막 벽 하나는 천장까지 닿는 높은 책장을 올리고. 책장에는 내가 읽은 책으로만 채워야지. 그리고 제일 편한 소파를 하나도 필요한데 어디다 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