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게 제일 좋아

by pahadi


좋다는 건 다 해보던 때가 있었다. 피부에 좋다는 화장품은 꼭 써보고 새로 나온 메이크업 제품도 열심히 샀다. 대부분은 내게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써봐야 직성이 풀렸다. 남들 하는 건 다 해본던 때가 있었다. 때때마다 네일숍에 가서 손톱을 단장하고 속눈썹도 길게 붙이고 피부과도 다니며 유행에 맞춰 새 옷도 샀다. 손톱, 발톱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꾸며야 나갈 준비가 끝났다.


꾸미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마스카라 때문에 눈이 따가워도 참고 높은 굽에 어기적거리며 걸어도 멋있다고 생각했다. 몸에 딱 붙는 옷이 불편했지만 그 정도는 참을만했고 손톱에 예쁜 그림을 그려 넣느라 앉아있는 시간이 좀이 쑤셔도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피부과에서 시술을 받을 때도 No pain no gain을 외쳤다.


그러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사춘기 시절에도 겪지 않았던 여드름과의 사투였다. 내 피부는 단단하고 매끄러운 편이었다. 다만 콤플렉스가 있다면 어두운 피부. 하얀 피부를 갖고자 피부과를 찾았다. 다양한 시술들이 금세라도 하얗게 만들어 줄 것처럼 나를 유혹했다. 따끔따끔 때론 찌릿찌릿한 고통을 견뎌가며 열심히 피부과를 다녔다.


하지만 웬걸. 어느 순간 나의 고민은 어두운 피부가 아니라 여드름이 되었다. 레이저 시술로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피부는 화가 난 듯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다. 이제 미백이 아니라 여드름 치료가 필요했다. 압출할 때마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압출을 하고 진정을 하고 피부과를 나오며 여기 다신 오나 봐라 생각했다가 피부를 수놓는 여드름 때문에 일주일에 멀다 하고 피부과를 찾았다. 하지만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내 평생 여드름 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피부과도 건강한 식단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프로 검색러답게 인터넷과 책을 뒤져 피부에 자정능력이 망가졌다는 결론을 내렸다. 해결책은 피부 스스로 해결하도록 놔두는 것. 좋자고 했던 것들이 독이 되었다. 화장은 물론 과도한 클렌징과 유수분의 공급도 피해야 한다고 했다. 더 해볼 것도 없던 터라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모든 것을 그만뒀다.


처음 며칠을 사람 몰골이 아니었다. 건조한 피부를 뒤덮은 하얀 각질들이 나와 세상을 가로막았다. 얇은 각질들은 어느새 두께가 생겼고 피부 상태는 최악을 달렸다. 하지만 이 단계를 지나야 피부의 자정능력이 돌아온다고 해서 참고 참았다. 피부가 이 난리이니 꾸미는 즐거움이 무엇이랴. 화장도 네일도 새 옷도 모두 흥미를 잃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차차 변화가 생겼다. 각질이 줄고 여드름도 사라졌다.


게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그 이후로 특별한 일이 아니면 화장하지 않는다. 화장을 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세수도 간단히 한다. 기초 화장품도 최대한 간단히. 가끔 호르몬의 영향으로 달라지기는 하지만 대체로 건강한 피부를 유지 중이다.


그렇게 화장과 멀어지며 꾸미는 즐거움과도 멀어졌다. 화장을 안 하고 꾸미는 일이란 팥 없는 찐빵이랄까. 억지로 길게 기르던 손톱도 짧게 자르니 훨씬 깔끔하고 편하다. 여기에 맞춰 자연스러운 옷도 편한 옷을 입고 낮은 신발을 신는다. 그렇게 편하디 편한 모습으로 30대가 되었다. 30대에는 커리어 우먼이 되어 칼 정장을 입고 또각또각 자신감 넘치게 살 줄 알았더니...


요새 외출의 목표는 최대한 깔끔하게다. 머리도 단정하게 빗고 세수로 깨끗하게 하고 향이 거의 나지 않는 로션을 바른다. 잘 세탁된 옷을 걸치고 가벼운 천 가방과 편한 신발을 신는다. 씻는 시간을 제외하면 10분 정도면 충분하다. 아, 이 얼마나 가성비 넘치는 외출인가.


다만 지금도 가끔은 나의 민낯이 어색하다. 칙칙한 다크서클과 색 바랜 입술이 예뻐 보이지는 않는다. 때로 예쁘게 꾸민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스스로가 초라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이런 편안함을 알아버렸는데 절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기에 나는 너무 게으르다. 그리고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화장을 하고 꾸민다고 해서 김태희처럼 이뻐지는 것도 아니다. 남들은 내가 화장을 했든 안 했든 크게 관심도 없다. 자신감은 내 생각의 문제일 뿐. 도저히 예전처럼 부지런히 꾸밀 엄두가 나지 않으니 대신 좋은 인상으로 버무려볼까 한다. 자, 그러니 오늘도 거울을 보며 자신감 있게 미---소! 화장보다 예쁜 미소가 더 아름답다고 스스로에게 합리화하며 오늘도 편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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