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의 나에게

by pahadi


안녕? 잘 지내고 있니? 매우 상투적인 인사로 편지를 시작하는구나. 너는 이제 막 서울이라는 낯선 곳에 와서 홀로서기를 시작하고 있겠지? 가족과 떨어져 새로 시작하는 하루하루가 낯설고 힘들 거야. 너의 그 향수병은 14년째 계속되고 있어. 별로 나아지지 않는단다. 너는 워낙 가족을 사랑하는 집순이였으니까. 그렇다고 몇 개월 전으로 돌아가 고향에 남으라고 말하지도 못하겠어. 그랬어도 넌 분명 후회했을 테니까. 다만 한 가지 위안은 그렇게 혼자 시작한 타지 생활이 너를 많이 변화시켰다는 거야. 스스로 선택하는 법도 외로움을 견디는 법도 차근차근 익숙해질 거야.


대학에 입학하면서 너는 부모님께 선언했지. 성적표를 보여드리지 않겠다고. 아빠 엄마는 흔쾌히 승낙하셨어. 너를 믿으신 거지. 거기까지는 좋아. 하지만 넌 더 열심히 공부했어야 했어. 대학생도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어. 네가 대학교 때 조금 더 열심히 공부했다면 지금 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삶을 보내고 있었을 거야. 뭐, 14년 후에 나에게 또 편지를 받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공부해야겠지.


너는 늘 다이어트를 입에 달고 살았지. 뚱뚱하다고 말이야. 지금이나 그때나 우리의 몸무게는 한결같은데 왜 그때는 뚱뚱하다고 생각했을까. 먹고 싶은 걸 참고 빈 속을 아메리카노로 달래다가 몸이 상한단다. 건강해지기 위해 운동하고 맛있는 것을 즐겁게 먹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너는 전혀 뚱뚱하지 않다는 거야. 그러니 너에게 더더더 관대해져도 괜찮아.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다고 말이야.


너는 늘 자신감 없어 보이지만 속으론 누구보다 스스로를 믿는 걸 알아. 언젠가 멋진 무언가가 되어 보이겠다고. 하지만 그건 자신감이라기보다 어떤 열등감이었던 것 같아. 현실을 벗어나 보려고 허황된 미래를 가정하는 거지. 그때나 지금이나 네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에는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야. 다만, 중요한 건 네가 움직여야 한다는 거야. 귀인이 나타나 너를 파라다이스로 인도하길 기다려선 안 돼. 매일 복권이나 사면 당첨되길 기다리지도 마.(물론 복권도 사지 않고 당첨되길 기다리는 것보다는 낫지만) 네가 되고자 하는 모습을 위해 그때부터 행동했다면 지금 우리는 많이 달라져있지 않을까? 물론 지금도 늦지 않았어. 열심히 살아보자고.


그리고 나는 또 네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을까. 이제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 사실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겪은 네 덕에 지금은 내가 있는 거니까. 충분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우리가 함께 보낸 14년 동안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간직할만한 순간도 꽤 있었잖아. 앞으로 다가올 날들도 반드시 좋을 거야. 오늘처럼 말이야. 언제나 너의 행운을 빌며! Good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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