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배 좀 채우고 생각해 봅시다.

by pahadi


스스로 식사를 해결하지 못하는 노년의 남성들은 배우자가 사망 시 더 큰 좌절감을 느낀다고 한다. 끼니를 때운다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필수적인 행위다. 혼자 옷을 입고 스스로 씻는 일처럼 요리도 누구나 자연스럽게 해야 하는 일 같다. 요리를 못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부끄러운 일이다. 인터넷에서 다양한 레시피를 찾을 수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요리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때론 지친 마음과 무기력한 몸이 이 쉬운 길도 마다할 수 있으니 레시피를 찾아볼 필요도 없는 손에 익은 요리 몇 가지 정도는 숙지하고 있는 것이 좋다.


음식의 당위성은 맛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맛있는 맛이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양질의 재료가 들어가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맛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우리를 일상에서 구원해줄 음식은 2-3장짜리 레시피가 아니다. 냉장고 문을 열어서 쉽게 재료를 구할 수 있어야 하고 몸과 마음이 슬픈 날에도 쉽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어느 정도 맛도 있어하니 맛과 편의성의 타협점을 잘 찾아야 한다.


입맛에 맞으면서 간편한 요리법은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니, 경험을 통해 스스로 찾아야 한다. 몇 번 해 먹다 보면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자신만의 요리법이 탄생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사골처럼 우려먹는 요리법 몇 가지가 있다.


끈기 덮밥

양파를 냄비에 깔고 목살을 올리고 토마토소스를 붓는다. 그리고 약한 불에서 뭉근하게 40분 정도 끓인다. 밥에 얹어 먹으면 끝!


끈기 덮밥은 내가 즐겨보던 <오늘을 뭘 먹지?>라는 요리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메뉴다. 이름 그대로 끈기가 필요한 덮밥. 시간만 충분하다면 간단한 재료로도 충분히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다. 삼겹살을 써도 되지만 기름기가 없는 것이 좋아 나는 목살을 사용한다. 양파와 시판 토마토소스는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재료 준비의 부담도 적다. 여기에 매콤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청양고추, 느끼함을 즐기고 싶다면 치즈를 추가할 수 있다. 냄비 하나로 끝나는 요리니 뒤처리도 간단하다.


장조림

물에 덩어리 고기를 넣고 삶는다. 익은 고기는 칼로 대충 썰고 간장, 설탕, 양파, 통마늘을 넣고 조린다. 밥과 함께 먹으면 끝.


장조림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일 수 있지만 나는 초간단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좋아해서 자주 먹고 싶으니까 어려우면 안 된다. 호주산 쇠고기 홍두깨살로 준비하면 재료비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 가성비를 더 높이고 싶다면 우리에겐 신이 주신 만능 재료, 달걀이 있다. 재료가 준비되었다면 과정은 끈기 덮밥 못지않게 간단하다. 삶은 고기를 손으로 찢으면 더 부드럽겠지만 노동력 최소화를 위해 칼로 뚝뚝 썬다. 그리고 양념을 넣고 졸으면 된다. 장조림의 가장 큰 장점은 간과 조리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졸이다가 싱거우면 간장, 설탕을 더 넣으면 되고 묽으면 더 오래 조리면 된다. 물론 조리의 황금시간이야 있겠지만 실패한 장조림을 다시 끓여도 어느 정도 맛이 난다. 완성된 장조림은 보관기간도 기니 냉장고에 잘 넣어두었다가 반찬으로 먹거나 질리면 버터와 에그 스크램블을 곁들어 버터 장조림 비빔밥으로 변신시킨다.


돼지 불고기

불고기 감로 얇게 썬 돼지 앞다리살에 시판 돼지갈비소스를 넣고 굽는다. 여유가 된다면 양파, 파, 버섯 등을 추가해도 좋다.


물론 소스를 만들어 사용하면 좋겠지만 그건 나에게 진입장벽이 너무 높은 일이다. 시판 갈비 소스만 있다면 불고기도 초 간단 요리가 된다. 이것은 불고기인가, 갈비인가. 포인트는 바로 갈비소스다. 내 입맛에는 불고기 소스보다 훨씬 맛이 좋다. 구울 때는 백종원 님의 팁으로 물을 살짝 넣고 졸이듯이 구워주면 고기를 태울 염려도 없다. 재료는 상황에 따라 레벨 1부터 10까지 다양하게 준비한다. 이 마법의 소스는 그 어떤 재료도 품어주니 재료 고민은 하지 마시길.


배를 채우는 것은 라면 같은 인스턴트 음식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시판 소스를 이용하더라도 직접 만든 음식이 내 영혼을 달래는데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배가 고프면 예민해지고 우울해지기 쉽다. 일단 몸을 움직여 뭐라도 먹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때로는 단출한 음식 한 그릇이 당신을 우울의 구렁텅이로부터 구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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