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은 우리였다.

by pahadi


우리집의 가장 좋은 점은 거실에 누워서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에 높은 건물이 없어 가능한 일이다. 탁 트인 덕에 앞, 뒤로 바람도 잘 통한다. 하지만 감수해야 하는 단점도 있으니 바로 고물상의 소음이다. 아파트 코 앞에 큰 고물상이 있어 온종일 고철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진다. 포클레인으로 고철을 이리저리 옮기는 소리를 들으면 공사장에 한복판에 있는 기분이다. 가끔은 이 소음에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고물상이 그곳에 버티고 있는 덕에 시야를 가리는 높은 건물 대신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을 즐길 수 있기도 하다.


이 애증의 고물상이 이번 달까지만 운영된다고 한다. 도심 한복판 노른자위 땅에 그 넓은 부지가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곳에 높은 건물을 세우면 고물상을 운영하는 것보다 훨씬 이득일 텐데. 자본주의 법칙에 따라서인지 아니면 소음으로 인한 주변의 민원 때문인지 고물상이 안녕을 고했다.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하던 소음의 근원지지만 이별이라고 하니 아쉬움 마음이 든다. 역시 이별은 모든 것을 미화시키는 힘이 있나 보다. 조용해진 고물상 앞을 지나다 보니 키가 높게 자란 해바라기와 담을 수놓은 넝쿨과 나팔꽃 그리고 한창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있는 고추와 화려하게 꽃을 피운 채송화들은 어디로 갈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막 제철을 맞은 자연과 이를 찾는 나비와 벌들. 그들은 이곳을 떠나 어디로 가야 할까.


비슷한 일은 전에도 있었다.


대학교 4학년 때 기숙사를 나와 고시원 생활을 시작했다. 고시원은 창문이 없는 방이 가장 저렴하고 그 다음은 창문만 있는 방, 그리고 창문과 화장실이 있는 방이 가장 비쌌다. 나는 현실과 타협해 창문만 있는 방에 살고 있었다. 때는 창문 너머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던 늦여름이었던 것 같다. 공부를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깨어보니 온 방에 벌이 가득했다. 정말 '세상의 이런 일이'에 나올 만한 상황이었다. 꿈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지나치게 현실이었다. 열마리 정도는 이미 침대 위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고 자신의 앞날을 알지 못하는 몇몇은 창문 물구멍을 통해 일렬종대로 들어오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밤인지, 낮인지, 새벽인지 상관없이 방을 뛰쳐나갔다. 일단 벌에 쏘이지 않으려면 방을 나가야만 했다. 어둠이 가득한 길바닥에서 한숨 고르고 나니 망연자실해 눈물까지 났다. 사실 그날 밤 정말 울어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벌들이었을 텐데. 본능적으로 불빛을 따라왔다 목숨과 친구들까지 잃어버렸으니 말이다.


다음 날 고시원 아저씨께 들은 이야기는 더욱 놀라웠다. 고시원 바로 옆에 양봉장이 있다는 것이다. 아니, 이 복잡한 도시 한복판에 양봉장이 있다고? 직접 가보니 정말 건물과 건물 사이로 나무로 만들어진 벌집들이 놓여있었다. 주변 민원 때문에 양봉장을 옮기려고 해도 벌들이 이 곳을 기억하고 찾아와 미처 옮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빌라와 고시원이 들어서기 전부터 그곳은 그들의 집이었다. 그 새벽 나를 거리로 몰아낸 벌들이 미웠지만 사실 그곳에 낯선 이방인은 그들이 아니라 나였다. 대대손손 살던 곳에 계속 살겠다는데 나가라고 하니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우리는 꽃과 나무를 밀어내고 시멘트와 벽돌로 그곳에 채워 주인 행세를 한다. 돈을 지불했다고 서류에 이름이 쓰여있다고 해서 다 주인이 아닌 것을.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나가는 나그네임을, 지구의 이방인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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