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대를 긍휼히 여기노니.

by pahadi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완벽해 보이는 누군가의 작은 흠이 나에게는 위로가 된다. 이러한 현상을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현상이라고 하는데 독일어로 남의 불행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을 의미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인 것이다.


누구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느끼는 시기와 질투심에 놀란적이 있을 것이다. 때때로 이는 순수하게 축하해주지 못하는 나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시기와 질투도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누군가를 부러워한다는 것이, 미워한다는 것이 자신에게 편안한 감정은 아닐 것이다.


세상은 늘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말한다. 좋은 관계를 맺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진심 어린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지만 태초부터 꼬인 나는 사람이 너무 어렵다. 사랑하고 싶지만 믿어지지가 않고, 안녕과 행복을 바라지만 종종 질투가 난다. 나라는 인간은 왜 이럴까. 내가 지극히 인간다운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위안하고 방법을 찾아보자. 심지어 이것도 내 마음 편하자고 시작한 고민이다. 내 이상(착한 사람)과 현실(샤덴프로이데)이 충돌할 때마다 느껴지는 자괴감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서.


내가 찾은 인간관계의 만병통치약은 연민이다. 연민은 다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연민은 누구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착한 마음으로 우리 바닥에 있는 것들 중 가장 따뜻한 것이다. 다른 사람을 안쓰럽게 여기면 모든 악감정이 사라진다. 이것은 나의 우월함을 기반으로 하는 싸구려 동정과는 다른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 거친 세상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아닌가.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쌍한 존재이기 때문에 연민은 슬픈 감정도 아니다. 연민은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사랑이다. 연민은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시작이고 우리를 서로에 대한 이해에 다다르게 한다.


김영민 교수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 결혼하는 제자에게 이런 주례사를 남겼다.

"아무리 부부지만 상대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말기 바랍니다. 특히 각자, 상대가 모르는 외로운 전투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배우자가 자신이 모르는 어떤 외로운 싸움을 혼자 수행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씩 해주기 바랍니다. 그래서 외로운 전투 중인 상대를 되도록이면 따뜻하게 대해주기 바랍니다."


나는 이 글에서 연민을 읽었다. 내게 가장 어려운 관계는 남편이다. 가장 가까운 만큼 기대하는 것도 많아서 일 것이다. 남편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다스리는 데도 연민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 내 곁에 있는 나와 같은 레미제라블이여. 오늘도 힘겨운 전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구나.'


누군가가 미워진다면 그를 긍휼히 여겨보는 건 어떨까. 우리 모두, 하루하루를 견디는 고단한 존재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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