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래깃국.

by pahadi


어릴 적 우리 집 밥상의 주인공은 늘 시래깃국이었다. 큰 들통에 된장을 풀어 삼삼하게 끓여낸 시래깃국은 그 양이 어마어마해 먹어도 줄지 않는 마법의 수프 같았다.


밥상이 온전히 엄마의 책임이라는 것에 대해 그 누구도 의심을 품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엄마는 가게일 하랴, 집안일하랴, 아이들 키우랴 늘 바빴다. 시래깃국은 48시간처럼 흘러가는 나날에도 자식들을 먹이겠다는 엄마의 강한 의지가 담긴 음식이었다.


말로 표현은 안 했지만 매일 똑같은 국, 그것도 고깃국도 아닌 시래깃국이 어린 입맛에 좋을 리 없었다. 나는 시래깃국의 비밀이 공짜로 주워오는 시래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시래기 어디서 주워오는 거야?"

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

"샀지! 그걸 누가 공짜로 주니?"

나에게 시래깃국은 딱 그 정도의 가치였다.


그 시래깃국을 먹고 쑥쑥 자라 나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되었다. 이제 조금이나마 엄마의 삶을 헤아려본다. 끼니때마다 밥상에 뭐라도 올리려면 어떤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낀 인생에서 아이들의 밥그릇을 챙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제는 안다. 결코, 절대! 시래깃국이 쉬운 음식이 아니라는 것을.


무청을 잘 말리면 시래기가 된다. 보통은 무청보다는 시래기를 사지만 그래도 할 일이 아주 많다. 바삭바삭 마른 시래기는 잘 씻어 물에 8-10시간 정도 충분히 불려야 한다. 그리고 3-4시간 푹 삶아준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시간이 해결해 주지만 다음은 순수한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삶아낸 시래기는 찬물에 여러 번 헹구어 물기를 꾹 짜내야 하는데 이 무거운 시래기가 된장국을 가볍게 유영하는 그 시래기가 맞나 싶다. 한 번 끓여보고 다시는 엄두가 안 난다.


시래깃국은 쉬운 음식이 아니라 그냥 엄마에게 익숙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어떤 반찬을 만들까 고민도 없이 반자동으로 만들 수 있는 그런 음식. 지금 나도 똑같다. 어떤 국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반사적으로 대답하는 그런 음식. 시래깃국.


어떤 반찬을 할까 고민할 여유도 없이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 엄마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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