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이나 되새겨봐도 믿을 수 없지만 대학시절 나는 댄스 동아리였다. 몸치, 박치에다 몸 쓰는 것이라고는 서기, 앉기, 눕기 뿐인 내가 댄스 동아리라니.
가족, 친구, 집... 내 전부를 떠나 기숙사에서 시작한 대학생활은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기댈 곳이라고는 오직 이층 침대 내 자리에 있는 베개뿐이었다. 어디든 끼어보자고 시작한 게 댄스 동아리였으니 역시 외로움은 사람은 이상하게 만드나 보다. 신입생이 고픈 댄스 동아리 장 룸메이트 언니와 사람이 고픈 나의 인연이 나를 댄스의 세계로 이끌었다.
하지만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하나. 동아리에서 나의 포지션은 늘 부진아였다. 그렇다고 내가 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만큼 춤을 좋아하지도 않았으니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아졌다. 선배들은 미꾸라지 같은 나를 어떻게든 가르쳐보려고 애쓰고 나는 나대로 안 되는 것을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매번 내가 오늘은 탈퇴하리라 다짐했지만 어김없이 다음 모임에도 참석했다. 부진아에 문제아인 나를 내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이 그리워서 사람이 좋아서 꼬박 3년을 채웠다. 캬. 다시 생각해도 대단하다. 누가 가르쳐서 이 모양이냐며 나 때문에 싸우는 선배들 앞에서 고개 들고 있기도 망신당할 줄 알면서 무대에 오르기도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끝까지 버텼다니 어디 이런 철판이 있나 싶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절대 끝까지 버티기가 아니다. 아직도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 안무를 와장창 틀리는 나를 떠올리면 손발에 힘이 들어가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할머니쯤 되면 귀여웠다고 웃음 질 수 있으려나) 나 때문에 속 썩이던 선배들과 동기들을 생각하면 미안함을 넘어 죄스러운 마음까지 든다. 다시 돌아간다면 나에게 꼭 말해주리라. "야! 네 자리가 아니면 나와. 사람이 어느 정도 어울리는 곳에 있어야지."
동아리는 참 좋은 것이다. 이제까지 학교에서 정해준 시간표대로 움직이던 우리가 자발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위해 모이고 무대든 책자든 모종의 목표를 향해 삐그덕 삐그덕 힘을 합쳐 달려 나간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공부, 직장인이 되어서는 일에 치이니 대학시절 아니면 언제 이렇게 열정만으로 움직일 수 있겠나.(물론 요즘은 일찍부터 취업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과거야 바꿀 수 없고 동아리를 통해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언젠가 친구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내가 못하는 것을 채워서 평균적인 인간이 되고 싶어. 다 잘하는 르네상스적인 인간은 못 되더라도 두루두루 할 줄 아는 사람 말이야. 그래서 피아노를 다시 배우려고!"(그렇다 나는 춤만 못 추는 게 아니라 음악에도 아주 젬병이다.) 인생의 거대한 방향을 정하고 비밀스럽게 뱉어낸 나의 진심을 친구는 대번에 비웃으며 말했다. "잘하는 거나 해."
아! 그렇지 잘하는 거나 해야 된다. 인생이 얼마나 짧은데. 그리고 그 잘하는 것을 헤도 순간순간 고비가 얼마나 많은데. 진짜 즐기려면 잘하는 것을 해야 된다. 그래야 재미있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교집합이면 더욱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