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비밀, 비밀

by pahadi


초등학교 1학년 때 내 짝꿍은 늘 칼정장을 입고 왔다. 셔츠, 조끼, 재킷 삼박자를 갖추고 쌀쌀한 날에는 바바리코트를 입었다. 그 아이의 바바리코트에는 어른들의 것처럼 안주머니가 있었다. 나는 그 아이의 칼 정장보다, 젤 바른 앞머리보다, 늘 교실 앞까지 바래다주는 엄마보다도 그 속주머니가 부러웠다.


바지에 딸린 주머니나 셔츠 주머니와는 비교되지 않는 바바리 안주머니의 매력. 아무도 모르는 아지트이자 그 어떤 비밀도 안전하게 숨겨줄 수 있는 안식처. 나만 아는 신기하고 이상한 나라.


봄이 지나고 가을이 올 무렵 나도 엄마를 졸라 바바리코트를 샀다. 당연히 안주머니가 있는 코트였다. 나는 그 주머니에 늘 무언가 소중히 품고 다녔다. 주로 끄적거린 종이나 구슬 같은 잡동사니들이었다. 별 거 아닌 것들이지만 안주머니에 들어가는 순간 비밀이자 보물이 되었다. 가끔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것들을 만지작 거릴 때면 괜스레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비밀을 좋아한다. 남몰래 가지고 있는 비밀 하나쯤은 있어야지. 여전히 그 비밀이란 것은 그때의 낙서나 구슬처럼 별 거 아닌 것들이지만 나는 그것들이 참 좋다. 나름 시라고 끄적였던 것이나 아무도 모르게 산 로또. 언젠가 타사 튜더처럼 살고 싶다는 꿈이나 다 잘 될 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희망.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이 쓸데없는 것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늘 처음처럼 나를 설레게 한다. 비밀은 나에게 자유를 준다. 비밀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꿈꾸고 마음 바뀔 때는 접으면 그만이다.

몸은 컸고 머리는 늙었고 현실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지만 그래도 바바리코트 안주머니에 대한 환상은 영원히 깨지지 않길 바란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하루를 사는 평범한 어른이지만 그래도 비밀의 숲에는 언제나 콩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자라도록 자주 살펴보고 물도 줘야지. 쑥쑥 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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