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상 위

작은 공간, 큰 행복

by pahadi



우리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내 방, 특히 내 책상이다. 내 책상은 철저하게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로 채워져있다.


책상 위에는 KEEP CALM CARRY ON 포스터가 걸려있다. 10년 전 유럽 여행에서 사온 이후 쭉 내 책상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다. 이 문구의 역사적 배경은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뜻이 좋아 비싸게 주고 사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차분하고 꾸준하게 살고 싶지만 아직도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좁혀지지 않아서 이 포스터가 한 동안 더 자리를 지켜줘야할 것 같다.) 아마도 2-3만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배낭 여행자 신분에 신용카드까지 잃어버려 한푼이 귀할 때 큰 마음 먹고 산 물건이라 여전히 내게는 값비싼 물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책상 오른쪽에는 타미 인형 세 체가 놓여있다. 타미 인형은 1960년에 출시된 바비 인형의 라이벌 격인 인형이다. 바비 인형의 인기에 밀려 고작 몇년만에 생산이 중단되어 지금은 이베이 경매에서나 만날 수 있다. 기본 50-60년의 세월을 겪은 이 인형의 가장 큰 매력은 얼굴 표정이다.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얼굴을 그려넣었기 때문에 똑같은 인형이라곤 없다. 내 책상 위에도 새침한 타미, 청순한 타미, 발랄한 타미가 있다.


왼쪽에는 구 물통, 현 연필꽂이가 놓여있다. 한창 수채화를 그릴 때 쓰던 세 칸짜리 물통이 아이패드의 등장과 함께 연필꽂이가 되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역할에 잘 적응하고 있다. 색연필, 볼펜, 사인펜, 연필, 샤프... 각가지 필기구들이 세 칸을 빼곡히 채운다.(가끔은 넘치고...) 신혼집에 내 짐이 들어오던 날, 남편은 이 연필꽂이를 보며 평생 볼펜을 안 사도 되겠다며 좋아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내 필기구들은 계속 증식하고 있다.손으로 쓰는 일이 점점 줄어 어느새 먼지가 뽀얗게 쌓였지만 그래도 연필꽂이가 있어야 책상이지.


책상 위에는 읽고 있는 책들이 제멋대로 누워있는데 산만한 나는 책을 읽을 때도 이책저책 들었다 놨다, 돌아가며 읽는다. 읽다만 책들이 책상 한켠에 쌓여가고 다 읽히지 못한 죄로 몇 개월, 아니 몇 년 째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책들도 있다. 좋아서 사기까지 한 책들이 빌려온 책들보다(무서운 반납기한) 더디 읽히는 아이러니.


그 어떤 날에도 이 책상에 앉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손수 채운 공간. 이 좁은 공간도 이렇게 나를 행복하게 하는데 인생을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면 얼마나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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