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밴드의 멤버가 탈퇴했다. 습관적으로 곡을 듣다가 검색창에 밴드 사진을 보았는데 아무리 봐도 3명이 아니라 2명이었다. 이런. 은퇴가 아닌 탈퇴에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그래도 정말 슬프다. 가장 큰 아쉬움은 다시는 3명이 함께하는 무대를 볼 수 없다는 것. 위안이라면 그전에 몇 번 콘서트를 다녀왔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그 밴드는 이제 음원 속에서나 내 머릿속에만 남았구나. 그렇게 영영 사라져 버렸구나.
맛있다는 스콘을 주문했다. 클로티드 크림과 함께. 줄 서야 사 먹을 수 있다는 스콘을 우리 집 앞까지 배달해준다니 세상 참 좋아졌다. 맛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상상하는 그 맛일까? 내가 가장 좋아하던 스콘은 이제 만날 수가 없다. 나에게 클로티드 크림의 세계를 처음 열어준 나의 최애 스콘 가게는 문을 닫았다. 종종 인터넷을 검색해 보는데 몇 년 전 블로그 글만 남아있을 뿐이다. 더 많이 먹어둘걸. 더 열심히 먹어둘걸. 이참에 내가 한 번 구워볼까 싶지만 역시 남이 해주는 게 맛있지.
겨울 옷을 정리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여름옷이 필요해졌다. 반팔을 찾아 옷장을 뒤지니 내 기억 속에서 조차 사라진 옷들이 쏟아진다. 고생한 나를 위해 이쯤은 살 수 있다고 호기롭게 샀던 비싼 원피스며 그나마 젊을 때 입어봐야 한다고 샀던 화려한 치마며 몇 번 입어보지도 못하고 고이 모셔둔 옷들이 옷장 한편에 한심하다는 듯 걸려있다. 내 통장 잔고를 비우며 사들인 옷들은 대부분 수집품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너무 꾸민 것 같으니까 특별한 날 입어야지, 비싸니까 아껴 입어야지라는 온갖 이유들로 옷들은 제 기능을 잃고 정물이 되었다. 그리고 아무리 정물이 다하더라도 세월의 흐름은 비껴갈 수 없어 어느새 유행이 지난 퇴물이 되고 말았다. 아이고 아까워라. 역시 아끼다가 똥 되는 것이 진리구나.
우리 할머니는 언제나 과일을 아꼈다. 검은 봉지에 싸여있는 과일들은 보물처럼 냉장고 속에 꽁꽁 숨겨져 있었다. 누군가 열심히 봉지를 파헤치지 않는다면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아는 사람은 오직 할머니뿐이다. 때로는 할머니조차 검은 봉지 속 과일의 존재를 잊은 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잊힌 듯 잊히지 않은 그들이 빛을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소중한 것이 더 이상 소중해지지 않을 정도의 시간 말이다. 과일들이 군데군데 멍이 들고 썩기 시작할 때가 그때다. 상하여 제맛을 잃은 과일들은 그제야 할머니의 식탁에 오를 수 있다. "할머니, 제발 맛있을 때 드세요. 어차피 드실 거잖아요."라고 한 마디 드리고 싶지만 엄마도 포기한 단호박 할머니께 별 소용도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내 옷장을 보니 나도 그리 말할 자격이 있어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은 사라진다. 모든 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는 더 열심히 즐겨야 한다. 아끼지 말고 즐기십쇼. 맛있는 건 열심히 먹고, 예쁜 옷은 열심히 입고, 좋아하는 사람은 열심히 만나고. 어차피 우리 모두 사라질 텐데 조금 더 격렬하게 즐기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