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언제나 실망시키지 않는 것은 자연뿐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도 내 마음 같지 않고 좋아하는 식당도 가끔 맛이 다를 때가 있는데 자연만은 언제 만나도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이다.
오랜만에 안양천을 따라 쭉 걸었다. 농사짓는 땅에 자랐으면 잡초라고 구박받았을 것들도 이곳에서는 하나의 완벽한 풍경이 된다. 이름 모를 풀들이 질서 없이 자란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 된다. 금계국, 개망초 흔하디 흔한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마음을 설레게 한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땀까지 식혀주니 완벽한 순간이다.
그런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눌러쓴 모자와 얼굴을 가린 마스크가 이리 고마울 줄이야. 귓가에 퍼지는 자전거 탄 풍경의 노래 때문인지, 그 노래에 담긴 추억 때문인지, 들꽃이 너무 예뻐서인지, 지나가는 커다란 개가 무서워서 인지, 오랜만에 재회한 배추흰나비 때문인지, 다가올 인생이 두려워서인지.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울었다.
그렇게 울고 나니 가슴 한편 뻐근하던 감각이 잦아들었다. 그렇다. 나는 너무 오래 눈물을 참았다.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외면하던 감정들이 흘러가는 강물을 믿고 쏟아져 나왔다.
친구들은 나에게 조울증이라고 말했는데 요즘 나는 우울증인 것 같다. 우울증보다 조울증이 더 난한 병이라고 하니 병세가 좋아진 것일까?
태어나자마자 처음 배운 것이 우는 것인데 왜 우리는 살아갈수록 울음을 삼켜야 할까. 생의 마지막 순간 울지 않으려면 그전에 많이 울어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에게 다가올 어른들의 발달과업을 내가 해낼 수 있을지, 견딜 수 있을지 두렵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이 곳에 와서 열심히 울 것이다. 그리고 또 괜찮은 듯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