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4년 차 대충 요리사

by pahadi


복잡한 건 질색, 꼼꼼함은 멸종한 나는 레시피대로 요리하는 게 참 어렵다. 언제나 레시피보다 감을 믿어서 내 요리는 자주 산으로 간다. 하지만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나도, 가족들도 잘 살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가끔 아들의 편식에 부딪히기는 하지만 언젠가 너도 적응이 될 거야. 아빠처럼)


남편과 결혼한 1할 정도의 이유는 남편이 가지고 있는 한식 조리사 자격증 때문이다. 이 세상에 수많은 자격증들이 종이 그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남편이 장거리를 출퇴근해야 해서 요리는 자연스럽게 내 차지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실력이 늘어야 하는 것이 정설이지만, 현실은 언제나 이론과 다르다. 4년 만에 매너리즘에 빠져 다람쥐 쳇바퀴 돌듯 몇 가지 음식만 반복 중이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불고기 다시... 이 상황을 가장 못 견뎌하는 건 나다. 새롭고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다고!


그래서 요즘은 초간단 레시피들을 모으고 있다. 간단하면서 맛있는 그런 고 오오오-급 레시피 말이다. 예를 들면 야채와 우동에 소스만 만들어 부으면 되는 냉우동 샐러드(샐러드 믹스를 산다면 더욱 좋다), 재료를 한 번에 넣고 만드는 원 팬 파스타(시판 파스타 소스를 부으니 맛도 보장된다) 역시 게으르기 위해서도 공부가 필요하다.


오늘 새로 수집한 레시피는 바스크 치즈 케이크다. 스페인 바스크에서 시작되었다는 이 치즈케이크는 레시피가 무척 간단하다. (베이킹 치고...) 크림치즈, 설탕, 생크림, 계란을 잘 섞어서 구우면 된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겨뤄볼 만하지. 이 더운 날에 오븐을 쓰는 게 고역이었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


40분의 시간이 흐르고 오븐에서 나온 것은 치즈 케이크인가, 푸딩인가, 계란찜인가. 바스크 치즈 케이크를 먹어본 적이 없으니 잘 된 건지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확실히 잘 된 건 아닌 것 같지만) 음, 내 입맛에는 안 맞는군.(네가 잘못 만들었어.) 쉬운 게 비지떡인가.(네가 잘못 만들었다니까.)


간단한 레시피만 믿고 대충대충 만들었더니 (설탕은 부족해서 레시피의 반만 넣었고...) 정말 대충 만든 것 같은 음식이 나왔다. 레시피가 아무리 간단해도 간단하게 완성되는 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은 날.


그나저나 이 여름은 뭘 해 먹고 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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