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기로 했다

by pahadi



예쁜 것도 좋아하고 모으는 것도 좋아하는 나는 언제나 물건이 많다. 그만큼 사 날랐다는 뜻.


쓰지도 않고 버려진 물건들을 보며

비어 가는 통장 잔고를 보며

물건들에게 뺏긴 내 방을 보며

미니멀 라이프가 담긴 책을 보며

요새 참 고민이 많았다.


예전에는 예쁜 것을 보면 이건 꼭 사야 해! 라며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예쁘다는 이유 하나로 구매의 모든 당위성이 성립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도 되는지, 살만 한지 망설이고 또 망설인다.


필요한 것만 사면 나도 좋고 가정 경제에도 좋고 지구에도 좋겠지만 어디 인간이 쉽게 변하나. 머리로는 알겠지만 예쁜 물건만 보면 언제나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사고 싶은 손은 언제나 부릉부릉 하다.


이 이성과 본능의 부조화로 오는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망설이다 놓쳐버린 물건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고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것에 우울했다.


맥시멀 리스트와 미니멀리스트, 현실과 이상, 이성과 본성 사이 적당한 곳에 나만의 기준이 필요했다. 뭐든지 과유불급. 너무 참는 것도 나에게는 독이었다. 정해진 답이 모두에게 정답은 아니잖아.


그래서 좋아하는 것은 그냥 사기로 했다. 예쁜 것, 귀여운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 때론 시들하기도 하지만 볼 때마다 행복하다. 이 기분이라면 뭐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뭐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정도면 그냥 사야 되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대부분 쓸모가 없다. 단지 예쁨과 귀여움만 뽐낼 뿐.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기쁨을 선사한다. 이 실용주의 사회에서 예쁨과 귀여움으로 살아남았으니 얼마나 예쁘고 귀엽겠나.


하지만 나름의 규칙을 정했다. 하루에 하나만 사기로. 아무것도 사지 않은 날이 있다면 더욱 좋고. 그렇게 미루다가 보면 사지 않는 것들도 생기겠고 그 사이 내 이성과 본성도 어느 정도 타협을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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