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했다. 딩크를 원하지는 않았다. 아이 하나 정도는 있어도 되겠다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엄마가 되는 게 무엇인지,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워 본 적이 없었다.
임신 테스트기에 선명한 두줄이 그어졌다. 임신이었다. 그래. 임신이구나. 병원에 가야지. 그것뿐이었다.
입덧이 시작됐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고생인가. 신혼여행 때 탔던 유람선의 지하 1층 뱃멀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울렁대는 속을 부여잡고 먹는 족족 쏟아내며 초록색 위액이 뱉어냈다. 나날이 야위어가는 모습에 보는 사람마다 안타까움을 표했다.
배가 불러왔다. 임산부라는 새로운 포지션에도 어느 정도 적응했다. 산부인과도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의사의 한 마디는 너무나도 낯설었다. "큰 병원에 가보세요."
심장이 어쩌고, 폐동맥이 어쩌고, 너무 어려운 말들이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좋은 의미가 아님을.
대학 병원으로 옮겨 예약 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다. 매일매일 순간순간 기도했다. '우리 아기 건강하게 해 주세요.' 신을 믿지 않았었다. 하지만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 한 톨이라도 믿어야 했다. 괜찮을 거라고. 다 잘 될 거라고.
한 달 여의 병원 투어 끝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괜찮아요." 그때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내게는 천사였다.
막달이 되었다. 혈압이 치솟아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혈압 때문에 아기가 잘 크지 않는다고 유도분만을 권했다. 아기를 좀 더 키워서 낳고 싶다는 나의 무지한 말에 담당 의사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대로면 위험해요."
유도분만 날짜를 잡고 입원을 했다. 모른 척 외면하던 출산이 코 앞에 다가왔다. 얼굴도 보지 못한 아기보다 내가 걱정되었다. 울었다. 무서워서.
혈관으로 약물이 들어갔다. 분만이 시작되었다. 배가 아팠다. 누군가 허리를 도끼로 내리찍는 것 같았다. 양수가 터졌다. 다리 사이로 핏물이 흐르고 몸이 덜덜 떨렸다. 7시간이 걸렸다. 무언가 쏟아져 나오려고 했다. 밑으로 힘을 주라던 의사는 이제 힘을 주지 말고 참으라고 했다. 침대에 실려 수술실에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수술실에 차가운 침대에 누웠다. 시야가 흐려졌다. 정신을 차리라는 간호사의 말 사이로 울음소리가 파고들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되었다.
모든 시작이 그렇듯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쏟아졌다. 2시간마다 한 번씩 우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잠을 재우고 노래를 불러주고 놀아주는 뒤편으로 엄마라는 낯선 책임감과 나를 잃은 상실감이 뒤섞였다. 낮에는 아이와 함께 웃고 밤에는 혼자 울었다.
그 웃음과 눈물 사이로 아이는 자랐다. 혼자 앉고 일어섰고 아장아장 걸었다. 엄마, 엄마 나를 찾았다. 옹알옹알 서툰 말들을 쏟아냈다. 그 사랑스러운 존재 앞에 나는 무릎을 꿇었다. 꼭 안았다. 그러자 아이는 더 세게 나를 안아주었다.
또 새로운 시련이 찾아오겠지만 어쩐지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너는 자라고 나는 늙겠지만 그건 희생이나 소멸이 아니라 사랑일 것이다.
눈물들이 메마른 씨앗을 촉촉하게 적셨다. 부드러워진 틈 사이로 싹이 돋았다. 언젠가 꽃이 필 것이다. 새로운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