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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콜요청금지 Jun 06. 2016

채식주의자

한강

영국에서 영어로 번역 출간된 단행본 소설을 대상으로 주어지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해서 화제가 된 소설 <채식주의자>를 읽어봤다. 어렵고 난해한 구석이 있지만 어떤 맥락에서는 명쾌한 느낌도 든다. 타자와 스스로에 대한 폭력으로 일관된 부분이랄까.


국내에는 2007년에 출간되었고 작년과 올해에 미국과 영국에서 출간되었는데, 번역서 부문이긴 하지만 세계3대 문학상이라고 하는 맨부커상을 수상한 데에는 뛰어난 번역의 공이 컸다는 평이다. 스스로 책의 앞부분 20페이지를 번역해 출판사에 번역을 제의했다는, 젊고 열정적인 이 번역가도 꽤 주목받고 있는 것 같다.


작가가 올해 초 서울문학회에 초청받은 자리에서 <채식주의자> 에 대해 코멘트했던 내용이 근래 맨부커상 수상 후에 다시 언급되고 있더라.


그는 "인간은 선로에 떨어진 어린아이를 구하려고 목숨을 던질 수도 있는 존재이지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잔인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며 "인간성의 스펙트럼에 대한 고민에서 소설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4년 6개월에 걸쳐 쓴 소설은 우리가 폭력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세계를 견뎌낼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한다"며 "대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완성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소설 <채식주의자>는 2004년에 발표한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과 2005년에 발표한 <나무 불꽃>의 연작을 2007년에 묶어서 출간한 것이다. 책 소개에 나오듯이 갑자기 채식을 선언한 한 여자를 둘러싼 각종 폭력의 발현이 기묘한 아름다움과 교차로 그려진다. 맨부커상의 수상 사유에도 이런 불안,난감,아름다움에 대한 감상이 포함되어 있다.


맨부커상 선정위원회는 "불안하고 난감하면서도 아름다운 작품 <채식주의자>는 현대 한국에 관한 소설이자 수치와 욕망,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갇힌 한 육체가 다른 갇힌 육체를 이해하려는 우리 모두의 불안정한 시도들에 관한 소설"이라고 수상 사유를 밝혔다.


(*아래는 책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일 조심.)

수록된 첫번째 단편 <채식주의자>는 주인공 영혜의 남편의 시점으로 영혜가 갑자기 채식을 선언할 때부터 시작해서 그 일을 가족들이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묘사하고 있다. 두번째 단편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의 시점으로 자살 시도 후 정신적으로 온전치 않은 처제를 예술적 욕구의 재료로 이용하는 이야기이고, 마지막 단편 <나무 불꽃>은 정신병원에 들어간 영혜가 나무가 되겠다며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으로 다가가는 과정을 병간호를 하는 영혜 언니의 시선으로 서술하는 이야기이다.


어느 모로도 뛰어난 구석이 없는 평범함이 부담스럽지 않아 좋아서 결혼을 결심했다는 남편은 영혜에게 아무런 애정이 없다. 영혜가 새벽부터 냉장고에서 일부 채소를 제외하고 탈탈 털어 쓰레기통에 버리는 이상을 보이기 시작한 날도 출근을 늦게 만든 것에 화를 낼 뿐이다. 딸이 갑자기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걱정하는 아버지는 가족끼리 먹던 저녁상을 앞에 두고 뺨을 때리고 강제로 입을 벌려 고기를 밀어넣는다. 자해를 해서 병원에 입원하자 찾아온 어머니는 고기를 거부하는 딸에게 흑염소 달인 것을 속여서 먹이려고 한다. 영혜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물리적 폭력에 시달렸고, 남편에게도 보듬어지지 못하고 무심한 정신적인 폭력에 시달린다. 어머니조차 딸의 상처입은 마음을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타인에 대하여 멋대로 자신의 잣대로 해석하고, 혹은 해석도 하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폭력을 가하는 사람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무심한 듯 이루어지는 그 무엇들이 극단적으로 그려지는 소설이다. 아버지가 가하는 가부장제 하의 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이 아니고, 남편의 무관심, 어머니의 외면과 언니의 방조 모두가 영혜에게는 폭력이 된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몰이해로 인한 의도된 혹은 의도되지 않은 폭력의 피해자는 영혜 뿐은 아니다.


지금 그녀가 남모르게 겪고 있는 고통과 불면을 영혜는 오래전에, 보통의 사람들보다 빠른 소겱으로 통과해, 거기서 더 앞으로 나아간 걸까. 그러던 어느 찰나 일상으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끈을 놓아버린 걸까. 잠을 이루지 못한 지난 석달 동안 그녀는 이따금 혼란 속에서 생각해왔다. 지우가 아니라면 - 그애가 지워준 책임이 아니라면 - 자신 역시 그 끈을 놓쳐버릴지도 모른다고.

다만 기적처럼 고통이 멈추는 순간은 웃고 난 다음이다. 지우가 어떤 말이나 행동으로 그녀는 웃기고, 그녀는 문득 멍해진다. 어떨 때는 자신이 웃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더 웃기도 했다. 그럴 때 그녀의 웃음은 즐거움이라기보다 혼돈에 가까울테지만, 지우는 그렇게 그녀가 웃는 모습을 좋아한다.

- p. 203 <나무 불꽃> 중에서


제일 좋았던 구절. 의도하지 않게 동생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모른 척했던 언니도 사실은 영혜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언니는 영혜가 미울 수도 있다. 너는 왜 포기해버리냐고. 왜 그냥 누워서 죽어가고 있냐고.


세 편의 연작 중 이 마지막 단편이 특히 맘에 들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저런 사는 일들의 인과관계들을 따지다보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싶은 일이 있다가도, 요행히도 일어나지 않을 뿐인 어떤 일들도 있다고. 어쩌면 나에게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 일어나는 게 더 자연스러워서 어쩌면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어색하게 느껴지는 일.


다만 소름끼칠 만큼 담담한 진실의 감각으로 느낄 뿐이다. 그와 영혜가 그렇게 경계를 뚫고 달려나가지 않았다면, 모든 것을 모래산처럼 허물어뜨리지 않았다면, 무너졌을 사람은 바로 그녀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다시 무너졌다면 돌아오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그렇다면, 오늘 영혜가 토한 피는 그녀의 가슴에서 터져나왔어야 할 피일까.

- p. 219 <나무 불꽃> 중에서


좋은 문학상의 수상작은 어려워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제 나이가 먹은 탓인지 -_- 꽤나 이해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슬픔으로 먹먹해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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