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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콜요청금지 Apr 26. 2017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일요일 아침, 눈을 떠서 뒹굴 거리다가 페북에서 여러 지인들로부터 공유된 영상을 봤다. 유시민 작가가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긴 영상이었다. 대학생을 졸업한지도 오래고,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그 후로 문득문득... 이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인생이 되게 짧고 부질없어요. 그러니 내가 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야 해요.


이것을 계기로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얼마 전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를 읽기 전에 진중권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거의 몰랐던 것처럼, 10년 전만 해도 정치에 노 관심이었던 나는 유시민에 대해서도 얼마 전 '썰전'을 보기 시작해서야 누구인지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이 책을 본 후에야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내가 10년 전보다는 사회와 정치에 관심이 생긴 것처럼, 그도 10년 전에는 아마 지금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나 보다. 과거의 그를 알았던 사람들이 그의 변화에 대해서 내리는 평가들을 보면 말이다. 이 책에서 본인도 자신의 변화와, 예전과 달라진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라는 제목의 첫 번째 장과 두 번째 장은 내가 연필로 그은 밑 줄 투성이가 되었다. 특히 유시민 작가의 나이에도 아직도 방황하고 있다는 나직한 고백은 진심이 느껴짐과 동시에 나를 안도감이 들게 했다. 나이를 먹을만큼 먹어서 아직도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언제나 불안하고 부끄러운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이렇게 어른스러워 보이는 사람도 끊임없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나이에 아직도 이런 질문을 껴안고 있는 내가 한심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여태껏 살아온 내 삶의 결과임을 인정한다. 만약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계속해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이미 훌륭한 인생이다. 그대로 가면 된다. 그러나 계속해서 지금처럼 살 수는 없다고 느끼거나 다르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삶은 아직 충분히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훌륭한 삶을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무언가를 바꾸어야 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들고 능동적으로 세상과 부딪치지 못했다. 번민하면서 주저하는 내게, 세상이 먼저 부딪쳐 왔다. 세상은 나더러 체념하거나 굴복하라고 했고, 나는 거절하고 저항했을 뿐이다. 부당한 강요에 굴복하면 삶이 너무나 비천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최소한의 인격적 존엄과 품격을 지키려고 발버둥 쳤다.
- p.34 <제 1장 어떻게 살 것인가> 중에서
그러나 자살을 용기로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삶도 용기만 있다고 해서 마냥 잘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사는 데도 죽는데도 다른 것이 있어야 한다. 삶의 그리고 죽음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다. 그것이 없으면 삶도 죽음도 주체적 선택일 수 없다. 삶은 습관이고 죽음은 패배일 뿐이다. (...) 내 삶에 대한 평가는 살아 있는 동안만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먼 훗날, 또는 긴 역사 속에서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내 스스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활동으로 내 삶을 채우는 것이 옳다. 그러니 내가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살자. 내 스스로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꼭 그만큼만 내 죽음도 의미를 가질 것이다.
-p.83 <제 2장 어떻게 죽을 것인가> 중에서


나는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고 있고, 특히나 책에서 무엇인가 알아내기를, 어떤 것이 나를 일깨워주기를 갈구하고 있는데 근래에 읽은 책 중에서는 이 책이 제일 찾으려던 것에 가까운 책인 것 같다.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왜 사는지, 왜 계속해서 살아내야 하는지, 이 우주에서 먼지 같은 아무것도 아닌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어떠한지,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나의 답을 찾아내고 싶은데 아직은 모르겠다.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시금 느낀 것은 언제까지고 계속해서 나 스스로의 삶의 이유와 의미를 찾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그 의미를 설정하는 것 외에는 어떤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다른 누구의 답도 나의 답이 될 수는 없다는 것. 그런 얘길 해주어 좋았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 철학자 밀


나도 이 책 3장의 제목처럼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열심히, 충분히, 최선을 다해서, we go high 하면서, 위대하지는 않아도 나에게 훌륭한 삶이 되기 위해서. 이름을 남기는 사람은 아니어도 매일 조금 더 훌륭해지면서.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함으로.


백만 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만 개의 스토리가 있다. 한 개의 스토리의 백만 개 카피가 아니라. 신입사원 연수 때 했던 카드섹션에서 고작 하나의 픽셀이 됨으로서 느꼈던 우주 먼지 같은 무력감은 그 후로 줄곧 나의 삶을 지배했다. 십 년이 지나서야 조금 나에게 관대해지는 것 같다. 그게 틀렸다고. 내가 고작 픽셀인 건 아니라고, 내 삶이 먼지 같은 의미인 건 아니라고. 나만의 방식대로의 삶으로서 바람직한 의미를 갖는다고 이 책에서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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