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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콜요청금지 May 03. 2017

아무래도 아이는 괜찮습니다

사카이 준코

요즘 세상은.. 노력하지 않아도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던 시대로부터, 치열하게 노력해야 가까스로 일자리을 구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시대로 변하고 있는 듯 보인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되었던 것이,

노력해야 가능한 시대에,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사카이 준코는 66년생 싱글 여성인 일본의 컬럼, 에세이 작가인데, '책이 너무 많아', '아무래도 아이는 괜찮습니다', '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의 세 권의 책이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매우 유사한 문화권으로 약간 앞선 시대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 대체로 비슷한 사회 분위기인 것 같다. 저자는 아이가 없는 여성으로서 아이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과 저출산 시대에 여성에 대한 출산과 양육의 부담 지움, 자식이 없는 사람의 장례 문제 등을 이야기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여자가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주 어렵다' -> '그러므로 여성이 일하면서 아이를 쉽게 키울 수 있는 환경과 제도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두드러졌습니다. 일하는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일은 그대로인데, 아이를 키우는 일은 모두 여자에게 맡겨집니다. 그래서 대단한 근성과 체력 혹은 재력과 친정의 원조가 있는 여성이 아니면 일과 양육을 병행하기는 어려웠습니다. (...) 그런데 최근에 와서 이 여성 교수처럼 "여성은 집에서 자녀 양육에 전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 출산휴가 제도에 대해서도 "회사와 직장에서는 너무 손해를 많이 보는 제도"라고 지적했답니다. 지금 우경화는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이런 분들의 의견을 듣고 있자니 출산과 양육에서도 우경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p.32

정말이지 미국에서도 하버드, 예일 대학을 나온 여자들이 결혼 후에 스스로 '전업주부'를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트럼프 당선, 브렉시트 등과 더불어 세계의 모든 것의 우경화를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세상은 뒤로 가고 있다. 아니 앞으로 가고 있다면 너무 느리다.


특히 우리 어머니처럼 평생 전업주부였던 노인들은 손주 안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자 지상명령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친구들이 속속 손자, 손녀가 얼마나 귀여운지 얘기하는데 자신은 그 이야기에 끼지 못한다는 것은 전업주부 인생의 마지막 칸을 채우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p.45

자식을 낳지 않는 것에 대해 당사자 외에게도 갖는 의미.


잘 아는 후배가 갓난아이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미혼인 그 후배 친구 A씨가 "축하해"라는 댓글을 다니까 이 후배가 "너도 다른 사람만 축하하지 말고 어서 네 아이 낳아야지. 정말 귀여워" 하고 달았더군요. 저는 그 글을 보고 '행복한 사람은 왜 이렇게 잔인할까' 하며 씁쓸해했습니다. 공적인 장소에서 "너도 빨리 나처럼 행복해지려무나"라는 말을 들은 거나 마찬가지인 A씨는 상처를 받았을지 모릅니다. -p.56

"아이를 낳고서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 정말 많습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아이 없는 사람들이 모로는 것을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서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무한한 사랑이거나 자신을 길러준 부모님에 대한 감사처럼 좋은 것들뿐입니다. 요컨대 "이런 멋진 것을 모른 채 아이가 없는 여러분은 나이만 처먹고 계시는 거예요"라는 말로 곡해할 수도 있다는 거지요. -p.61

ㅋㅋ 처먹고 계신대. 번역에서 이걸 살린 것도 참.


최근에는 상황이 변했습니다. 사람들의 의식과 사회제도가 변해 활발하게 일을 하면서도 결혼과 출산까지 해내지 못하면 '유능한 여성'으로 보지 않는 겁니다. (...) 어떻게 보면 '남성 정치인에게 아이가 있느냐 없느냐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여성 정치인에게 아이가 있다는 것은 큰 플러스 요인디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총리인 아베 씨 자신이 아이가 없는 만큼 남성 정치인은 '아버지'인지의 여부보다 개인적인 능력에 더 초점을 두게 하는 것입니다. 반면 여성 각료에게는 '어머니'인지의 여부가 중요합니다. -p.94, p.96

아베 총리가 자녀가 없는 사람이군! 쓸데 없지만 처음 안 정보. 의외로 그 점이 사회 정책 수립에 진보를 끼얻는데 도움이 되었을지도. 실제로 최근 일본의 출산률이 약간 증가했다고 한다. 출산률 저하의 문제는 아이가 없는 사람이 이유를 더 잘 알 것이 분명하다.


1978년 [후생백서]를 보면 3대가 함께 사는 것을 "숨겨진 복지 자산"이라고 기록해놓았습니다. 즉 당시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간호도, 마지막을 지키는 일도, 사후에 불단을 관리하고 참배하는 일도 '며느리' 몫이었기 때문에 국가는 개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잠자고 묵묵히 일하는 며느리의 무료 노동력이 국가의 "숨겨진 자산"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p.134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조상의 은덕을 바라면서 조상을 섬기는 일은 여자들의 노동력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작 조상의 은덕은 여자들에겐 돌아오지도 않는데.


책의 내용은 개인적으로 대체로 공감하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에세이...라서일지 메시지가 약간 뒤죽박죽 나열되어 있는 느낌. 전달하는 메시지의 통찰력도 아쉽고. 약간의 피해의식도 티나게 버무려져 있고. (피해의식의 표출도 필요하다고 보지만, 독자가 글을 중립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으므로)


제목이 흥미로워서 선택했는데, 내용이 정돈되어 있지 않아도 재밌게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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