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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콜요청금지 Mar 11. 2018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

마이클 해리스

소셜 그루밍 social grooming
- 인간을 포함하여 무리를 이루는 동물들에게 나타나는, 서로의 몸이나 외형을 닦아주고 보해주는 행동 현상


책을 읽고 나니, 책의 표지와 제목이 불만이다.

표지와 제목만 보면, 최근에 많이 읽히고 있는 자기 위로를 위한 에세이 같은 느낌도 들고, 심리학 이론 서적 같은 느낌도 드는데 내가 느낀 이 책은 최근 소셜미디어 및 연결성에 대한 사회현상과 연구들, 그리고 그에 대한 저자의 감상에 대한 책이다. 넓은 의미의 심리학 서적일 수는 있겠으나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 같은 괜한 걱정이 드는 표지랄까. 아무튼 이 책은 어디선가 소개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 얼른 구매를 했는데, 그 며칠 후에 '최인아 책방'에서 신청한 책 구독 서비스의 첫 번째 책으로 동시에 배송이 되어서 당혹스러웠다 -ㅁ- 하필 책이 2권이 되어버림 ㅋㅋ.. 그래서 더 기대와 호기심을 가지고 책장을 펼쳤다.


던바는 또 영장류의 집단이 더 클수록 사회적인 의미에서의 털 다듬기, 그러니까 보살핌, 친목 도모 등의 의미를 가지는 소셜 그루밍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집단의 규모에 따라 영장류가 서로의 털을 다듬어주는 데 할애하는 시간은 하루의 20퍼센트에 달하기도 한다. 던바는 엄청나게 큰 인간의 사회 집단을 고려한다면 오늘날의 인간이라는 동물은 하루의 많은 부분을 사회적 '털 다듬기'에 투자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 언어를 쓰지 못하는 영장류는 친구나 적의 털을 다듬어주려면 직접 손을 써야 한다. 그러나 말할 줄 아는 영장류, 일차적인 발성의 수준을 넘어선 복잡한 사회적 제안을 할 수 있는 영장류는 자신이 속한 사회적 집단의 여러 구성원들을 동시에 '다듬어줄' 수 있다. -p.31


영장류는 전체 집단원의 털을 다듬어주면서 가슴을 부풀린다. 트위터에서 "대수롭지 않게 던진 듯한" 계산된 발언이 여러 개의 리트윗을 받을 때 도파민이 분출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의미심장하게도 우리의 디지털 욕구는 거의 전적으로 사회적인 쪽에만 집중되어 있다. -p.42


플랫폼 회사는 무엇보다도 사회적이다. 옛날의 '파이프라인' 회사들은 뭔가를 건설하고 뭔가를 파는데 반해, (우버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 회사는 그저 공장만 지어놓고 노동은 당신 같은 사용자들을 불러들여 시킨다. 당신이 차를 운전하고 당신이 동영상을 만드는데, 수익은 플랫폼 회사가 차지한다. 여러 플랫폼들은 이 노동에 대해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지만, 공유한다는 즐거움이 보상이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 예를 들면 인스타그램이 2012년 봄에 페이스북에 10억 달러에 팔렸을 때, 그 회사의 직원은 고작 13명이었다. 그 회사의 실제 가치는 수많은 사용자에 의해, 감사하며 근면하게 일하는 대중에 의해 공짜로 창출되었다. -p.43


소셜미디어는 온라인으로 소셜 그루밍이 가능하게 한다. 소셜 그루밍은 인간을 포함한, 무리를 짓는 동물의 본능이다. 우리가 소셜미디어에 중독되는 이유다. 사랑받고 싶고, 연결되고 싶고, 소외되고 싶지 않다. 잠시도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실은 연결과 단절은 둘 다 우리의 행복과 생존의 기본 요건이다.


이제 육신을 가진 동료 외에 디지털 동료와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더 많이 '접촉'할 경우 이상한 종류의 외로움이, 군중 멀미를 느끼는 한계선에 도달한다. 우리는 서로 털을 다듬어주지만 그것에서 얻는 한계효용은 줄어들며, 사회적 연료를 계속 채워 넣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흡족하지 않다. -p.52


Everything is connected 가 목표이자 미덕인 세상에서 홀로 있음(책의 원제목인 solitude)은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고 역행하는 것 같지만, 단절의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함께 하는 시간의 소중함과 그 경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자신의 감각과 취향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감정 표현의 방식과 외모까지 순응하게 만드는 세상에서 나를 잃지 않을 수 있다. 


유튜브 앱에 '러닝 플레이리스트'를 입력해서 한 번만 클릭하면 50만 명이 도움이 되었다고 판단한 목록이 뜬다. 하지만 그런 집합적 의견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할수록 가치 있는 것과 무시해야 할 것에 대한 그들의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나 자신의 취향은 어디 있는가? 한 사람의 마음을 군중이 바꾸어 버리기가 얼마나 쉬운가? -p.143


나는 사실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가 한껏 외로워질 때가 있다.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혼자 있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이 변덕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자연스러운 인간 본능의 두 얼굴이었나 보다. 


괴짜 천재인 굴드는 1964년에 갑자기 연주회 열기를 중단했다. 그는 스튜디오의 고립 속으로 물어났는데, 어떤 인터뷰어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한 시간을 보낸다면 그에 비례하여 혼자서 X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일종의 규칙 같은 것이 있어요. 그 X가 얼마인지 난 잘 모릅니다. 2와 8분의 7일 수도 있고, 7과 8분의 2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상당히 높은 비율입니다. (...) 군중 속에서 보낸 시간에 비례하는 상당히 긴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 그건 아주 현명한 명제다. -p.285


이 책을 읽고, 혼자만의 시간에서 걷고 방랑하고 길을 잃고 헤매고 종이책을 읽고 마음껏 몽상하고 싶어 졌다. (하지만 내일은 월요일이라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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