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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콜요청금지 May 06. 2019

을의 철학

송수진

오늘도 읽은 책의 감상을 끄적거려고 보니, 새삼스레 글을 잘 쓰고 싶어진다. 사실은 글을 잘 쓰는 것 이상으로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의 생각의 깊이를 탐내는 것에 가깝지만. 오늘도 누추한 말을 아끼고 밑줄 그은 문장들을 남겨보는 걸로.



'을의 철학' 이라는 이 책은 서점 매대에 놓여있는 책 중에 제목에 끌려 손에 들게 되었는데, 여러 회사에서 직장 생활 경험이 있고 몇년 간 세무사 준비를 하다가 지금은 사회복지 분야에서 청소년 상담사로 활동하면서 철학과 석사 과정 중인 30대 중반의 작가의 첫 책이다. 무슨 얘기를 하는 책이냐면, 제목인 '을의 철학' 에서 철학은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개똥철학이 아니고, 진지하게 역사 상에 존재했던 마르크스, 니체, 스피노자 등의 철학가와 철학 사상을 연관시켜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로서 '을'이 현대사회의 개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책은 <나는 왜 하필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난 것일까?> 라는 제목의 1장으로 시작한다.


작가는 도서관에서 세무사 공부를 하던 중에, 우연한 기회로 마르크스의 책을 읽게 되고 철학의 사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철학자가 원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바로 세계의 모습이다. 세계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 윤곽을 따라 그려보고 싶은 것이다. 적어도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 하나는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보길 바란다. 말 그대로 나름의 해석이므로 그것은 언제나 의인적 해석이나 구상이다. 철학자는 모든 일과 세계를 인간과 같은 것이라고 간주한다. - 니체"

(...) 차라리 내 인생을 해석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을 수도 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완충지대에 머물 수 있다. 그러나 그러다보면 살아갈 힘을 소진하게 된다. 나는 그랬다.

해석하겠다는 것 자체가 살아갈 이유였다. 해석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건 죽은 삶을 사는 것과 같았다. 정답을 찾겠다는 게 아니다. 니체의 말처럼 정해진 답 같은 것은 없다. 내 삶의 정답은 내가 내 삶을 해석하면서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 누군가가 만들어준 답은 내 것이 아니다. 설령 좋아하는 철학자가 정답을 알려준다 해도 그 자체가 내 삶의 정답은 될 수 없다. 그와 나는 다른 사람이다. - p.30
철학자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타자와의 차이를 목숨처럼 강조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동일성, 전체성으로부터 벗어나 타인과의 차이를 억압하고 지배하는 것에 극렬히 반대했다. - p.219
행여나 불안이 다시 찾아오면 나는 철학자들의 언어를 찾는다. 죽음과 소멸의 공포에 포섭되지 않고 그에 대항할 수 있는 나만의 밑천을 오늘도 부지런히 찾고 있다. - p.272


나만의 철학이 부재한채로 수십년의 인생을 살아오다가 문득 그 사실을 깨닫게 되고, 성장의 과정에서 철학 소양을 좀더 쌓았다면 그럴 기회가 있었다면...이라는 아쉬움이 든 적이 있었는데 작가는 아예 본격적으로 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부럽기도 하고 경외심도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해서 책도 내고.


철학은 냉정하다.
철학에 포근한 위로는 없다.
있는 그대로를 보라 하고 어둠에 직면하게 하며 벼랑 끝에 서게 한다.
절대자에 기대지도 말고 오롯이 스스로 알아서 행복해지라고 한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그저 태어났다. 그 자체가 위대할 뿐이다.
- 표지 중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삶의 목적이 있을 꺼라고, 내가 태어난 이유가 있을 꺼라고. 있지도 않은 목적을 찾아헤매이거나, 목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무주의에 빠지거나 하는 게 아니라 나는 그냥 태어나 있는 거고 내 삶의 이유는 내가 만들어야 (존재하는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한다고 동의한다. 비록 불안은 끊임없이 다시 찾아오지만.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 물리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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