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창수
무기력은 피로, 번아웃, 우울이 겹쳐진 현상으로 마음의 배터리가 방전된 것이다. 마치 물먹은 커다란 솜옷을 입어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이 책은 깊은 늪에서 빠져나올 힘조차 잃어버린 무기력인들을 위해 한창수 교수가 내려주는 사다리다. 바닥부터 한 칸 한 칸 밟고 올라오라고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고 하나둘 구령 붙여 구체적으로 행동을 알려준다. 무기력이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만들 교본이다.
- 추천사. 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고민이 고민입니다》저자
하지현 의사의 《정신과 의사의 서재>라는 책도 동시에 읽고 있었는데, 마침 《무기력이 무기력해지도록》책을 뒤집었더니 뒷면에 하지현 의사의 추천사가 딱하고 남겨져 있었다. 《정신과 의사의 서재》내용 중 <추천사 쓰기의 정석>이라는 챕터를 읽어보면 책의 추천사를 대하고 쓰는 법에 대한 개인의 철학을 가진 분인 것을 알 수 있어서, 이 추천사가 괜히 반갑고 유심히 읽어보게 되었다.
《무기력이 무기력해지도록》이라는 이 얇고 가벼운 종이책은 어렵지 않고 쉽게 읽히지만, 사놓고 첫 장을 펴자마자 실망하는 자기 개발서처럼 내용이 얄팍하진 않다. 추천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확하고 친절한 안내 교본 같은 느낌.
성급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면 저자는 종장의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책을 마치고 있다.
끝으로, 잘 해내지 못할까 봐, 완벽하게 못 할까 봐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말라는 당부를 꼭 하고 싶다. 타인과 자신을 비교할 필요도 없다. 내가 정한 오늘 일을 하는 것이면 충분하다. 그러다 위기가 닥치면 잘 먹고, 운동하면서 생산적인 휴식으로 들어가라.
그렇게, 내가 정한 하루의 삶을 계속하는 것이다. 잊지 말자. 무기력은 이런 기본적인 생활로, 평범하지만 소중한 매일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경고인 것이다.
-p. 267 <에필로그.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신호> 중에서
하루하루 몸 건강 마음 건강을 노력하면서 성실하게 소중하게 살아낼 수밖에 없다는 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등 떠밀리듯 하루를 사느라 조급하고 초조해서 길을 잃은 것만 같은 기분인데, 잊고 있던 당연한 것을 다시 깨우쳐준다. 아 그렇지, 숨을 고르고 천천히 가야지.
하도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게 느껴지는 나의 상태를 좀 더 들여다 보고자 yes24 웹사이트에서 무기력으로 검색해서 고른 책인데, '게으름, 우울증, 번아웃의 심리학'이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우울증이나 번아웃과 무기력의 의미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번아웃과 우울증은 증상은 유사하지만 원인이 다른 정신건강이며 무기력은 번아웃이나 우울증의 증상에 가깝다. 그리고 무기력감의 원인은 체력 부족, 의지력 부족, 자율성이나 통제권 상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거나, 그게 아니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의 정신건강 문제일 수 있다.
1부에서는 무기력증의 다양한 원인을 감정, 정신, 몸이라는 카테고리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1장. 무기력은 감정이다>에서는 자존감, 공감 피로, 외로움, 이별에 대해서,
그리고 <2장. 무기력은 정신이다>에서는 자기 연민, 학습된 무기력, 게으름, 우울증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3장. 무기력은 몸이다>에서는 번아웃, 체력 부족, 만성 신체 질환, 뇌와 호르몬의 이상, 디지털 기술 스트레스를 중심으로 이것들이 어떻게 무기력감을 유발할 수 있는지와 각각의 상황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법을 소개한다. 다양한 관점을 간결하게 소개하고 있다 보니 종합적인 관점에서 어떤 원인이 있는지 명쾌하게 이해가 되는 느낌이지만, 각 주제를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싶다면 개별 주제의 책을 찾아서 따로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무기력의 원인은 생각보다 복잡할 때가 많다. 즉, 앞서 제시한 다양한 원인이 서로 얽혀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만성 신체 질환을 앓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우울증이 찾아와 무기력해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여기에 게으른 천성과 낮은 자존감이 맞물리면, 더더욱 견고한 무기력 상태에 접어들게 된다. 이럴 때는 앞서 제시한 전문적인 질환 치료와 심리 치료를 병행하는 한편, 개인 차원에서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p.142 <2부 도입 글> 중에서
그리고 보통은 무기력감의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라 좀 더 복잡하다는 말씀.
앞뒤 재지 않고 일단 뛰어들고 보는 아이의 마음가짐이 절실히 필요하다.
일단 시작하면 '자이가르닉 효과'가 작용한다. 자이가르닉 효과란 러시아의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이 명명한 개념으로, 무언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을 때, 그것을 잊지 못하고 계속 찜찜한 기분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우리 뇌가 일단 시작한 것을 '작업 기억(working memory)' 공간에 올려놓고 완성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한두 줄 글을 끄적여두면, 딴짓을 하면서도 틈틈이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결국 이야기의 빈 곳을 채워가는 인지적 능력이 있다.
-p.149 <4장 몸을 깨우려면 마음부터> 중에서
책 리뷰를 한참을 못 쓰다가 (몇 년 동안) 오랜만에 다시 써보기로 했다. 일단 이 책에 대한 리뷰 글도 쓰기 시작하니 계속해서 읽었던 내용을 곱씹으며 생각을 정리해서 남겨두게 된다.
며칠 전에 피트니스 유투버의 영상에서 어떤 헬스 가이 (다시 찾아보니 2021 미스터 인터내셔널 코리아 우승자 한정완 씨라고 함)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운동하기 싫은 날 해결 방법? 이라는 질문에 '운동을 안 해도 좋으니 헬스장에 출석 도장만 찍으러 간다'라고 생각하고 일단 가서 깨작거리다 보면, 그런 김에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운동을 하고 오게 된다는 답변을 본 것이 기억이 났다. 딱 들어맞는 예시가 -ㅁ-
일단 하자. 뭐라도 하자.
하다가 그만두더라도 안 한 사람이 아니라, 한 번은 한 사람이 되겠지.
무기력과는 전혀 거리가 멀 것 같은, 늘 넘치는 에너지를 자랑하는 사람을 보면 때때로 신기하기만 하다. 대체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나' 활력 넘치는 사람은, 알고 보면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숨어 있는 곳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 누구나 살다 보면 질병에 걸리기도 하고 감정적 고통과 마주하기도 한다. 그럴 대마다 항상 굳건한 의지로 잘 이겨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인생 내내 무기력증과 관계없이 산다는 것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마음이 들 때 내가 무기력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것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잠깐의 좌절을 넘어선 극심한 무기력이 찾아오지 않도록 평소 마음을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p.214 <3부 도입 글> 중에서
내가 무기력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것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일. 여기까진 이미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좋은 성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운동선수들은 마음을 컨트롤하는 능력(정서 조절)에 따라 행동 성향이나 운동 수행 능력 자체가 달라진다. 정서 지능이 좋은 사람은 훈련이나 경기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를 잘 조절하고 육체적 고통을 견디는 마음의 힘과 지구력도 좋다는 것이다. 수영 선수 대상의 연구에서는 정서 지능이 높은 선수일수록 스트레스 관리 능력과 성취도가 좋으며, 훈련을 다그치는 코치의 압박도 비교적 잘 견뎌낸다는 사실이 보고되었다. 농구, 야구, 골프 등 각종 운동 경기의 중계방송을 보면 "선수들의 멘탈 관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운동 잘하는 선수는 멘탈도 좋은 경우가 많다. -p.236 <7장 일상을 활기로 물들이는 습관> 중에서
운동 분야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일에 있어서 멘탈 관리가 중요하지 않을 리가 없다.
무기력을 주제로 한 책 중에, 가볍게 읽어볼만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