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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콜요청금지 Jan 09. 2022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우자생존

다윈의 <종의 기원>에 언급된 "적자생존" 설은 현재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매우 유명하지만, 이 단어는 다윈도 처음에는 자연선택설이라고 부르다가 다른 연구자(스펜서)가 서술한 용어를 채택해서 <종의 기원> 제5판에 도입한 것이다. 단어의 의미를 풀어보면 (환경, 상황에) 적합한 것이 살아남는다 는 것일 뿐인데, 보통 우월한 것이 살아남는다 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오해가 너무 오랫동안 인류 또는 동물의 진화를 설명하는 정설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 와서 보니 인간 종 중에도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현재와 같은 지구 상의 독보적인 존재로 진화하게 된 것의 본질은 친화력(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이었다는 것이 이 책의 논지이다.


다른 사람 종이 멸종하는 와중에 호모 사피엔스를 번성하게 한 것은 초강력 인지능력이었는데, 바로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이다. 우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와 하나의 공동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함께 일할 수 있다, 알다시피 침팬지의 인지능력도 많은 면에서 우수하다. 우리와 침팬지는 수많은 유사성을 보이지만, 크게 차이 나는 한 가지 능력이 있다. 침팬지는 하나의 공동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의도로 의사소통을 하기 힘들어한다는 점이다.
-p.29 <들어가며: 살아남고 진화하기 위해서> 중에서
하지만 우리의 친화력에도 어두운 면은 존재한다. 우리 종에게는 우리가 아끼는 무리가 다른 무리에게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위협이 되는 무리를 우리의 정신 신경망에서 제거할 능력도 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닌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중략) 우리는 지구 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
-p.32 <들어가며: 살아남고 진화하기 위해서> 중에서



생후 9개월이 지나면 엄마의 손가락 끝에서 이어지는 가상의 선을 따라가기 시작할 것이다. 생후 16개월 무렵에는 손짓을 하기 전에 엄마가 자기를 보고 있는지부터 확인할 것이다. 엄마가 보고 있어야 손짓이 소용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두 살 무렵이면 타인이 본 것과 생각하는 것을 알게 된다. 또 그들의 행동이 어쩌다 나온 것인지 혹은 의도한 것인지 구분할 줄도 안다. 네 살 무렵에는 타인의 생각을 아주 영리하게 추측할 수 있어서 난생처음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된다. 또 다른 사람이 누군가에게 속으면 도움을 줄 수도 있다.
-p. 40 <1장. 생각에 대한 생각> 중에서


심리학에서 ‘마음이론’이라고 부르는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다. 사람 종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는 남이 본 것, 남이 아는 것, 남이 기억하는 것을 추측하고 남의 목적과 의도를 이해하지만 협력과 의사소통을 동시에 하는 협력적 의사소통 (아기가 엄마의 손 끝을 따라가서 보는 것 - 우리 고양이에게 시켜봐도 못 하는 그것 ㅠ) 은 잘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사람과 오랜 시간 함께한 개는, 사람이 손으로 가리키는 숨겨진 먹이를 찾아낼 줄 안다. 개가 지능이 더 높은 것도 아닌데, 이 차이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자기가축화는 다른 동물 종들에게서도 일어났을 수 있지만, 자기가축화 과정이 시작될 때부터 극도의 자제력을 지녔던 것은 우리 종뿐이었다. (중략) 우리 종 안에서 독특한 유형의 친화력이 진화함으로써 더 큰 규모의 무리, 더 밀도 높은 인구, 이웃한 무리 사이에서 더 우호적인 관계가 가능해졌을 것이며, 그럼으로써 더 큰 규모의 사회연결망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것이 더 많은 혁신가 사이에서 더 많은 혁신의 전파를 촉진했을 것이다. 문화희 톱니바퀴는 느릿느릿 불규칙하게 돌기 시작해서 빠르고 맹렬해졌을 것이다. 그 결과가 기술의 지수 증식과 행동 현대화의 출현이다. 사람의 자기가축화 가설이 옳다면, 우리 종이 번성한 것은 우리가 똑똑해졌기 때문에 아니라 친화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p.123 <4장. 가축화된 마음> 중에서


로봇은 인간과 비슷할수록 호감을 주지만, 인간과 너무 똑같은 순간이 오면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데 이를 언캐니 밸리(The uncanny valley: 불쾌한 골짜기 - 로봇이 인체와 비슷할 때 인간의 감정 반응 그래프에서 따온 명칭) 라고 부른다. 나와 비슷하지 않은 사람을 볼 때 느껴지는 느낌도 이와 유사하다.


우리 그룹이라고 생각할 때에는 다정함과 친화력이 뿜뿜하지만, 우리 그룹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인간 취급을 하지 않는 비정하고 잔인한 마음이 생긴다. 전쟁에서 적군의 포로에게 말도 안 되는 고문을 하는 행위나, 사회적 편견이 가득한 인종 차별, 상대 이데올로기의 집단을 물어뜯고 비하하는 일 등등.


민주주의는 우리의 다정한 본성 속에 자리한 이 어두운 면을 견제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다.
-p.255 <8장. 지고한 자유> 중에서


(전략) 사람이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람 중에서도 우월한 집단과 열등한 집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더 높게 나타나는지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사람들 동물과 다르다고 여기는 태도나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태도가 이민자나 흑인이나 소수 민족 등 사람 외 집단을 동물로 비유하는 비인간화에 주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p.293 <9장. 단짝 친구들> 중에서


자기가축화 라는 개념으로 사람의 다정함과 그 어두운 그림자를 함께 조명해서, 인류의 진화와 현대 사회를 설명하고 있는 진화인류학 인문교양서이다. '김영하 북클럽 선정도서' 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고 고르게 된 책. 일단 제목도 말랑하고 표지도 따뜻해서 호감이 간다.


인류애가 자꾸만 사라지는 요즘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보다가, 왜 그런지 알고 싶을 때 조금은 도움이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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