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을, 그림 김수현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 사람에서 읽는 사람으로 변한
책 편집자였다가 직접 출판사를 차린 작가가 쓴,
제대로 도망치는 법에 대한 자기계발서 x 에세이.
자기계발서에 대한 거부감은 자기중심적인 태도에서 기인한다. 나는 더 바꿀 게 없다거나, 바꿀 게 있더라도 굳이 그런 노력은 하고 싶지 않다는 자기애가 모든 종류의 조언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제법 안정적인 삶을 산다. 웬만한 일에 흔들리지도 않고 남을 부러워하며 전전긍긍하지도 않는다.
(...중략) 자기계발서를 읽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낙관론자다.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라며,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따라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22 <나와의 약속보다 중요한 건 없다> 중에서
나는 저 구분에서는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 사람 쪽에 속하려나,
하지만 가끔 내가 읽는 자기계발서는 뭐지? -ㅁ- 나는 자기계발서를 읽는 사람이지만 인정하지 않는 사람.
열흘 정도 심하게 앓다 보니 몸이 내게 보내는 강력한 신호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지금 당장 도망치라는 신호였다. 그런데 무엇으로부터 도망친단 말인가. 실제로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게 부담을 주는 사람도, 내게 완벽을 요구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우리가 매일 치르는 자존감 전쟁은 관계 속에서 발생하지만, 실상은 나 혼자 치르는 인정 욕구와의 전쟁이 대부분이다.
-p. 26 <나와의 약속보다 중요한 건 없다> 중에서
언제부턴가 '존버 정신'을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삭막하고 팍팍한 세상, 실제로 '존버 정신'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상사의 갑질, 끝나지 않는 노동, 빠듯한 주머니 사정, 숨 막히는 인간관계, 매년 나빠지는 건강 등으로 점철된 삶에서 과연 버티는 힘마저 없다면 무엇이 우리 곁에 남아 있을까.
일리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살고 싶은가? 다른 방법을 찾아보지도 않은 채 체념하고 버티기만 하면 행복한 미래가 저절로 찾아올까?
(...중략) 역설적이게도 내가 원하는 내가 되려면 나에게서 도망쳐야 한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려 하는 순간 나는 점점 더 나에게 고립된다. 불필요한 자기애, 쓸데없는 자존심, 근거 없는 열등감에 시달리며 오기로 버티는 삶을 살게 된다. 말 그대로 버틸 수는 있지만 행복해질 수는 없다.
-p.30~32 <나와의 약속보다 중요한 건 없다> 중에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도망쳐라. 단 명분을 가지고, 의지력 있게 실행해라.
내 발목을 잡는 나를 뛰어넘어서.
호기심 없는 삶은 죽은 삶이다. 어디도 호기심을 가진 만한 여유가 없다거나 내가 확보한 알량한 영역을 지키기 위해 잔뜩 움츠러져 있다면 삶을 빛나게 만드는 생기는 사라진다. 호기심이 없으면 행동도 없고 변화도 없다. 당연히 어떠한 일에도 의지를 가질 수 없으며 그만큼 행복에서도 멀어진다.
-p.57 <인간의 최대 무기, 의지력 사용 설명서> 중에서
(집 나간 내 호기심을 찾습니다...)
인간은 나약하다. 우리는 관계라는 구도 속에서만 개인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 타인에 의해 발견되지 못한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분명히 물리적으로는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존재하는데도 관계의 맥락이 사라지면 우리는 스스로 존재감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의 고독이 필연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끊임없이 발견되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p.163 <어떤 정체성으로 살 것인가?> 중에서
내가 남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에만 연연할 필요는 없지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되는 나의 정체성을 인정하기. 그리고 내게 의미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발견되고 기억되고 싶은지 생각하기. 그리고 내가 스스로 좋아하는 모습이 되게 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포기가 가던 길을 중간에 멈춰 서는 행위라면,
도망은 살기 위해 지금까지 가던 방향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전력을 다해 뛰는 것이다.
-p.23
지루하지 않은 자기계발서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