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자 고바야시 다케히코
생물의 죽음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소개하는 책.
우연히 만들어진 유기물로부터 스스로 복제하며 변화하는 유전물질과 세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소개하는 <제1장 생물은 도대체 왜 탄생했는가?> 챕터로 시작해서
진화론적 관점에서 생물 다양화를 가능하게 한 멸종을 언급하는 <제2장 생물은 도대체 왜 멸종하는가?> 챕터와
생물의 죽음의 방식을 '잡아먹히는 죽음'과 '수명에 의한 죽음', 이 두 가지로 설명하는 <제3장 생물은 도대체 어떻게 죽는가?> 챕터,
그리고 인간 역사에 있어 수명의 변천사, 그리고 노화와 죽음을 설명하는 <제4장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죽는가?> 챕터를 거쳐
마지막 <제5장 생물은 도대체 왜 죽는가?> 챕터에서는 생물의 죽음과 멸종이 진화론적으로 가지는 의미와 필연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생명이 지구에 탄생할 확률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25미터 수영장에 완전히 분해한 손목시계의 부품들을 가라앉힌 뒤 빙글빙글 휘저었는데 자연스럽게 손목시계가 조립될 뿐만 아니라 작동할 확률과 같다." 그 정도로 낮은 확률이긴 하지만 완전히 제로는 아닙니다. 화학반응이 빈발할 가능성이 컸던 원시 지구에서 몇억 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서 극히 낮은 확률의 우연, 아니 기적이 몇 번이나 겹쳤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상선과 보존성이 높은 것만이 살아남는 '선순환'이 한정된 공간에서 항상 계속 일어남으로써 우연이 필연이 되면서 생명이 탄생한 것입니다.
-p.47 <제1장 생물은 도대체 왜 탄생했는가?> 중에서
어마무시한 우연이 겹치고 또 겹쳐야 생물이 탄생할 수 있으니, 외계에도 생물이 탄생하고 인간만큼의 문명이 발달해서 인간이 멸종하기 전에 서로 만날 수 있는 확률은... 또한 어마무시하게 희박한 숫자라고 할 수 있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녀가 부모보다 다양성이 더 풍부하고 생물계에 있어 더 가치가 있는 존재, 즉 생존 가능성도 더 큰 '우수한' 존재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부모가 죽고 자손이 남는 편이 종을 유지하는 전략으로서 올바른 선택입니다. 생물은 이렇게 다양성 중시라는 전략을 통해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입니다.
-p.224 <제5장 생물은 도대체 왜 죽는가?> 중에서
생물의 진화는 죽음과 멸종이라는 전략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므로, 생물이 존재하고 진화하기 위해서는 개체의 죽음은 필연적이다.
죽음 자체는 프로그램되어 있어서 거스를 수 없지만, 연장자가 조금이라도 건강히 오래 살아서 다음 세대, 또 그다음 세대의 다양성 실현을 지켜보고, 그러기 위해서 기성세대가 사회의 기반을 만드는 잡다한 일을 어느 정도 도맡는 일은 사회 전체로 봤을 때 이익입니다. 그러므로 장수에 대한 갈망은 결코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당연한 감정이라고 봅니다. 또 인간의 장수에 대한 갈망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온다는 측면도 있지만, 그 공포의 뿌리에는 다음 세대를 제대로 키워야 한다는 생물학적 이유가 깔려 있습니다.
-p.230 <제5장 생물은 도대체 왜 죽는가?> 중에서
지구 전체적으로 보면 모든 생물은 턴 오버하며,
생과 사를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났으므로 다음 세대를 위해 죽어야 합니다.
현실 세계에서 AI는 인간을 비극적인 방향으로 이끌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가 문제로 삼는 것은 AI는 죽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많이 공부해도 죽어서 제로 상태로 돌아갑니다. 그 때문에 문화나 문명을 계승하기 위해 교육에 시간을 들여서 차세대를 기르지요. 인간은 한 세대마다 리셋됩니다. 죽지 않는 AI는 리셋이 없이 버전 업만 무한반복할 뿐입니다.
(중략) 진보한 AI는 이제 기계가 아닙니다. 인간이 인격을 부여한 '에일리언' 같은 존재입니다. 더구나 죽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p.273 <제5장 생물은 도대체 왜 죽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