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형제들 나하나
일 문화는 조직에서 내리는 수많은 결정으로 만들어진다. 기업이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그만두거나 계속하는 것을 결정하는 기준이 바로 일 문화다. 그래서 조직 문화 담당자들은 직원들이 일터에서 겼는 우리 다운 문화에 기업의 비전과 목적, 핵심 가치, 일하는 방법 등을 반영해야 한다. 보통 이런 요소들은 홈페이지나 채용 공고에서만 중요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이 실제로 기업의 운영 방식과 일의 진행 과정 조직의 사고 체계뿐만 아니라 제도와 콘텐츠에까지 자리 잡혀야만 비로소 기업의 아이덴티티가 된다. 기업에서 겪는 모든 순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기업과 직원들이 다른 크기와 강도로 커뮤니케이션하며 자연스럽게 녹아들 때 진정한 ‘~다운 문화’로 거듭난다. 일 문화가 직원들에게 고루 분배된 기업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마치 청춘 드라마의 대사처럼 “이런 건 우리 다운 게 아니잖아요!”라고 말하는 직원들이 하나둘 생긴다.
- <일 문화는 ‘소나기 말고 가랑비처럼’> 중에서
하지만 아무리 캠페인을 해도 누가 어떤 사람에게 선물을 받았는지 공개하지 않으면 기업은 이를 알 길이 없다. 그런데도 거래처로부터 들어온 선물을 경매에 부치도록 피플실에 먼저 제안하거나, 명절이 아니어도 들어온 선물을 구성원들과 나눌 수 있는지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엄격한 관리체계가 없는데도 구성원들이 스스로 동참하는 것은 우아한형제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구성원들이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스며든 일 문화가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끄는 것이다.
- <일 문화는 ‘소나기 말고 가랑비처럼’> 중에서
특정 기업의 일하는 방식에 대한 책, 또는 그 방식을 소개하는 자기 계발서 류의 책들이 있고 구성원이 쓴 경우 애사심으로 오글오글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는 경우가 있어 거부감이 드는 편인데, 이 책은 회사에서 일문화를 담당하는 구성원이 써내려간 일에 대한 애정 어린 자세의 진심이 느껴져서 재밌게 읽었다.
나는 고작 2-3개의 회사를 경험했지만, 적당한 커트라인 이상의 신입사원을 잔뜩 뽑아서 개인은 시스템에 속한 매스게임의 픽셀로서만 의미를 가지는 경직된 대기업 문화도 경험하고, 소규모였던 회사에서 자유롭게 스스로 일의 의미를 찾으며 동료와 협업해서 일하는 분위기도 경험하고, 규모가 커진 회사에서 그 분위기가 신기루로 사라지는 것까지 경험하면서 왜, 무엇이 이 일 문화를 만들고 이끄는지 언제나 궁금했다.
지금 와서 가장 민감한 요인으로 생각하는 것은, 회사 대표와 임원진의 태도와 영향력이다. 나는 내가 속한 큰 회사의 사장님의 영향력을 얕잡아봤다. 한 선배는 사장님은 내가 바꿀 수 없고 적당히 환경에 적응해 나가면 되는 날씨 같은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런가 보다 했지만 나중에야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뼈아프게 실감했다. 그 사장님의 생각과 태도에 따라, 회사 문화의 방향이 설정되거나 지지되거나 무력화된다는 것을. 실행과 실패는 구성원들의 몫이지만 사장님이 그저 구성원들이 적응하기만 하면 되는 날씨는 아니었다는 것을.
잠깐, 수평적인 문화라고 해서 조직의 모든 의사 결정이 보텀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맞을까? 또 보텀업 의사 결정이 많다고 좋은 문화일까? 조직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보텀업과 톱다운 방식의 의사 결정이 모두 필요하다. 무엇보다 수평적인 문화라고 해서 모든 것이 평등하고 자유롭다는 의미는 아니다. (중략) 김범준 전 재표는 실제로 구성원들에게 “리더가 좋은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다양한 의견을 많이 말씀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중요한 결정은 리더가 내리지만, 구성원들이 다양한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소통 문화가 있는 것이다.
- <수평적인 문화의 역설> 중에서
이전 회사에서 영어 호칭은 정말 좋았다. 호칭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직급에 무관하게 동등한 의견 교환이 가능하게 하는 그 힘이 정말 좋았다. 내가 그 회사에서 신입부터 일했다면 스스로 일하고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습관을 빨리 배웠을 것 같다. 이건 영어 호칭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알아둬야 할 것은, 수평적인 문화는 동등한 의견 교환 바로 그뿐이다. 의사결정의 책임과 권한, 그리고 실행은 탑다운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게 헷갈리면 리더가 아니라 구성원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실행 과정이 파편화되고 비효율적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생긴다. 이 책에서 언급한 위 내용과 비슷한 결인 것 같다.
처음에는 점심을 함께 먹는 것이 왜 일의 일종인지 그 의도를 정확하게 공감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왜 이 업무가 피플실에 중요한지 깨달았다. 어쩌면 이 업무는 우아한형제들에 인사팀보다 피플실이 먼저 생긴 이유와 같지 않을까. 구성원들을 관리하기보다 그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고 함께하려는 창업자의 마음의 반영된 것이다. (중략) 김봉진 의장은 피플실에 이렇게 요구했다. “행복은 아이스크림 같아서 자주 녹아요. 그래서 행복한 경험을 자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해요. 구성원들에게 소소한 행복감을 많이, 자주 느끼게 해 주세요.
- <요즘 직원들은 정말 관심을 싫어할까> 중에서
대표와 경영진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강력하다. 대표성을 띠기 때문이다. 기업의 소통 문화를 통해 직원들은 기업의 일 문화와 핵심 가치를 흡수한다. 그러므로 기업은 우리가 어떤 핵심 가치에 따라 어떻게 의사 결정을 내리는지, 어떤 의미를 추구하는지 수시로 조직에 공유해야 한다. 이렇게 일 문화의 싱크를 맞추는 과정을 꾸준히 하면 기업이 굳이 알리지 않아도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핵심 가치대로 움직이는 성숙한 문화로 발전하게 된다.
- <탑다운과 보텀업의 조화> 중에서
이 책을 읽고, 우아한 형제들의 기업문화를 귀동냥하여 내가 느낀 것은 일 문화에 대한 조직 차원의 투자(절대적으로 많은 시간과 사람과 비용)가 배민다움을 만들고 유지한 가장 큰 원동력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측의 지지가 기반이 된다면 구성원들은 이미 학습된 일 문화를 계속해서 지키고 고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성원들에겐 일하는 곳에서 추구하는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니까. 반면에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투자 없이 회사 내외부에 멋들어진 슬로건을 공허하게 외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정말로.
책에서 느낀 배민다움의 진심을 응원해 본다. 좋은 사례는 많을수록 좋고 세상이 아름다워지는데 일조할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