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 욕망에 숨겨진 관계 심리학
이 책에서는 뇌의 기능이 발견되고 연구된 순서대로 인지 기능, 감정 기능, 모방 기능을 각각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뇌라고 부르고 있다. 책의 제목인 세 번째 뇌는, 사회적 관계와 자아 관계와 관련된 뇌의 기능을 일컫는다. 정신과 의자이자 신경심리학자인 저자 장 미셸 우구를리앙은 철학과 정신의학, 심리학 사이를 오가면서 욕망의 모방 기능과 이와 관련된 정신 치료 방법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르네 지라르는 작가들을 서로 비교하면서 조명한다. 그는 도스토옙스키의 <영원한 남편>을 설명하기 위해 프루스트의 <갇힌 여인>을 불러들인다. "우리가 했던 사랑을 잘 분석해 보면, 우리는 여자를 얻기 위해 싸울 다른 남자라는 평형추가 있을 때만 그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형추가 없어지면 여성의 매력은 사라진다." 여기서 프루스트, 도스토옙스키, 르네 지라르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모델이 욕망하는 것을 모방자가 욕망하는 모방 욕망은 경쟁을 낳고, 경쟁은 다시 욕망을 낳고, 욕망은 열정의 형태로 과열된다는 것이다.
- <1.2 같아지고 싶은 욕망> 중에서
오늘날 인간은 욕망의 암시들로 포화 상태이고, 그로 인해 욕망은 무력하고 덧없는 것이 되었다. 광고는 충족되기 쉬운 욕망을 제안하지만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금지된 욕망도, 욕망을 금지하는 권력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나 돈이 없다는 이유로 충족되지 못하는 욕망은 좌절을 불러일으킬 뿐이고, 욕망을 충족한 사람은 그것을 너무 쉽게 충족했다는 이유로, 또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그 욕망을 충족했다는 이유로 역시 좌절하고 불만족스러워한다. 광고에서 제안하는 용이한 욕망에서는 자유가 축소되고, 나아가 소멸하는 부작용이 있다. 모델이나 경쟁자를 선택할 때 타인을 따라 할수록 욕망은 더욱 '일반화'되고 우리는 더욱 환상 속에 살게 된다.
- <1.2 같아지고 싶은 욕망> 중에서
모방 욕망에서는 타인과의 관계를 모델, 경쟁자, 장애물로 구분한다. 타인을 모델로 인식하는 경우 나와 그를 동일시하고 싶어 하고 그의 욕망을 모방한다. 경쟁자는 나와 동일한 욕망을 추구하지만 욕망의 대상이 공유될 수 없어 뺏어야 하는 경우이다. 장애물은 내가 욕망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타인으로 모델이나 경쟁자가 어느 순간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내 생각에는 위대한 소설가들이 학위를 받은 심리학자들보다 인간 심리에 더 정통한 것 같다. (중략) <캉디드>의 마지막 부분에서 볼테르는 모방 메커니즘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을 두 번이나 보여준다. (중략) 그러고 나서 캉디드는 터키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자신은 자기 밭에서 나는 과일과 채소를 팔아먹고산다고 캉디드에게 말한다. "터키에 넓고 좋은 땅을 갖고 계신 모양입니다"라는 캉디드의 말에, 노인은 "손바닥만 한 땅이죠. 아들들과 함께 농사지으면서 권태, 방탕, 욕구라는 세 가지 악덕과 떨어져 산답니다"라고 대답한다.
(중략) 모방의 관점에서 보면 루소는 모방 경쟁의 위험을 예견하고 사물에 모방 경쟁의 책임을 물었다. 사유재산, 즉 개인의 소유물은 경쟁을 촉발하고, 경쟁은 사회 불안과 불행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루소가 보지 못한 것이 있다. 사유재산이 경쟁을 촉발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소유물과 내 보잘것없는 소유물을 비교하는 것이 경쟁을 촉발한다는 사실이다.
반면 볼테르는 두 가지를 이해했다. 먼저 자신의 밭을 가꾼다는 것의 의미는 내 밭이 다른 사람의 밭보다 큰지 작은지 비교하는 것이 아니고, 둘째로 맡에서 일을 하면 슬픔, 부러움, 질투, 욕구가 치료된다는 것이다. 볼테르가 말한 것은 내가 <사이코폴리틱>에서 말한 것과 같다. 노인이 자신의 밭을 가꾸는 것은 '직업'이 아니 다. 그는 일하는 시간을 계산하지 않는다. 밭일은 노인의 인생이다. 그는 주당 서른다섯 시간을 일하고 밭의 절반을 놀리는 것을 노동자의 권리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일을 인생의 본질로 생각하는 순간 일하는 시간을 재지 않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하지 않는 시간은 죽어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중략) 터키 노인은 밭에서 일하고 밭에 욕망과 에너지를 투자함으로써 철학자 마르탱이 한탄했던 '걱정 충동'과 '권태로 인한 마비'라는 두 가지 불행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일은 '내가 갖고 있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것'에 집중하게 하고, 인간의 불행과 모방 경쟁이 쳐놓은 함정에서 빠져나오게 한다.
(중략) 루소와 볼테르는 모방 현실을 살짝 비켜가는 두 방식을 상징한다. 하나는 절망의 원천인 부정적 모방이고, 다른 하나는 행복의 원천인 긍정적 모방이다.
- <책을 마치며> 중에서
제목만 보고 골라서 정신병리학적 이론을 읽으려고 택한 책은 아니었는데 읽다보니 내용이 살짝 지루할 뻔했지만 의외로 마무리 장에서 갑작스럽게 눈이 뜨였다. 모방 현실을 인정하고 자기 욕망의 타자성을 인정하는 편이 좋지만, 그 보다 본질적으로 편안함에 다가가는 방법은 모방 욕망이 아닌 스스로의 욕망과 가진 것에 집중하고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