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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콜요청금지 Sep 01. 2015

1973년의 핀볼

무라카미 하루키

쥐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하늘이 아직은 여름의 찬란함을 다소나마 간직하고 있던 9월 초순이었다. (중략...) 그녀는 그녀만의 조그만 세계에서 나름대로의 완벽함을 확립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노력이 보통 이상의 것이라는 건 쥐도 잘 알고 있었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언제나 꽤 세련된 원피스를 입고, 깨끗한 속옷을 걸치고, 몸에는 아침에 포도원에서 나는 향내와 비슷한 오데코롱을 뿌리고, 주의 깊게 단어를 선택하며 얘기하고,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않고, 거울을 보면서 몇 번씩 연습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쥐의 마음을 아주 조금 슬프게 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의 연작이면서 3년이 지난 23살의 자전적 소설. 여름의 이야기가 3년의 해를 바꾸어 가을로 이어진다.



이야기의 한가지 축은 젊은 날 연인을 잃은 '나'의 상실의 슬픔이다.


하지만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나오코를 사랑했던 것도, 그리고 그녀가 이미 죽어버렸다는 사실도. 결국은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가도 가도 똑같은 풍경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지겨워졌다.


그리고 동시에 무력감과 허무로부터 변화하고 싶은 '나'의 친구, '쥐'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이따금 문득 생각난 듯이 몇 가지 감정의 잔물결이 그의 마음으로 밀려왔다. 그럴 때면 쥐는 눈을 감고 마음을 꽉 걸어 잠그고 물결이 사라지길 꼼짝 않고 기다렸다.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본 걸까. 그런 걸까. 사람은 그냥 다들 똑같이 살아가는 걸까. 내가 눈을 꼭 감고 기다리는 것처럼.


제이에게 이 고장을 떠난다고 말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왠지는 모르지만 끝내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얘기하려고 할 때마다 목이 바짝바짝 말라 맥주를 마셨다. 그러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아무리 발버둥쳐봐도 아무 데도 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쩌면, 늘 구원을 꿈꿔왔던 것 같다. 구원이라고 하면 종교를 통한 구원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그런 형태의 구원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특정한 한명의 사람이 나를 구원해주는 것 또한역부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지막으로는, 내가 아닌 외부의 어떤 것에 나의 구원을 기대하는 것은 이상한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나의 천국으로 나를 콕 집어서 데려갈 어떤 것이 존재할 리도 없고 가능성도 없다. 하지만 애초에 무엇으로부터 벗어나도록 구원을 받고자 했는지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그냥 어디론가 데려가졌으면 좋겠다.


내가 도망가고자 하는 그 현실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디로부터 어디를 향해 어떻게 떠날지 모르는 '쥐'처럼. 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의 스무살처럼, <1973년의 핀볼>의 스물세살처럼 이십대의 방황을 졸업할 수 없는 걸까.



왠지 이상해, 모든 게 실제로 일어난 일 같지가 않아.
아니, 정말로 일어난 일이야. 다만 사라져버렸을 뿐이지.

쓸쓸한 가을이 가면 시린 겨울이 올 것이다. 둘 다 싫다. 이제 다음의 봄과 여름을 기다리면서 봄을 노래하는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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