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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콜요청금지 Jan 03. 2016

No Kid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하는 40가지 이유

2007년에 프랑스에서 첫 출간되어서 한국엔 2008년에 번역된 책(지금은 절판된 듯).  오래전에 읽었던 책인데 한 살 나이를 더 먹는 지금 책장에서 다시 꺼내어 읽어봤다. 동거와 혼외자식도 편견 없이 오히려 장려하는 나라, 프랑스의 여성 심리학자가 쓴 책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대한 회의적인 견해의 이야기. 그녀에게 아이가 두 명이나 있는 것은 함정. 그렇지 않으면 이런 책을 출간할 수도 없을 테지만.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하는 40가지 이유를 나열하는 책이지만 이 책의 저자가 꼭 아이를 낳지 말라고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에 대한 각오를 도와주고, 그냥 '좋은 거야', '좋을 거야', '당연한  거야'라는 말보다 실제로 힘이 될 것 같은 책. 그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고 싶다고 결정한다면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을 테니까.


흔히들 가정은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며 편안한 곳이라 '안식처'라 불린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안식처라 하는 가정은 점점 더 비인간적인 시장 논리의 지배를 받고 있다. 가정에서는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개성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지만 이는 이상화되고 미화된 것일 뿐이다.
(... 중략) 사실 현대 가정은 이를 기반으로 한 폐쇄적인 감옥에 지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서 말다툼을 벌이고, 시어머니 혹은 장모와의 갈등이 있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 대대손손 증오가 반복되고, 그 누구도 밝히고 싶어 하지 않지만 모두를 짓누르는 수치스러운 가족의 비밀이 있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
(... 중략) 모성이란 달콤한 것이라고 배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감정을 그냥 억누르기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모 노릇을 한다는 게 겉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일지 몰라도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는 셈이다. -p.112

흐음.. 이 책을 읽어보면 프랑스의 가정도 한국과 다르지 않다고 -ㅁ-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신 그들은 결혼을 하지 않는 선택이 보다 쉽긴 하지.


우리는 개미 군단 같은 사회에 살고 있다. 이 같은 사회에서는 노동과 출산이 인간의 조건에서 최후의 영역을 이룬다. 노동은 국민에게 아편이요, 아이는 국민에게 위로가 된다는 걸까? 삶의 목적이 오로지 돈을 벌고 아이를 낳는 것인 사회라면 미래가 있을 수 없다. 꿈이 없는데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삶의 의미가 뭘까'라고 자문하지 않으려면 아이를 낳는 게 최선이라고 한다. 주변이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 중략) 출산을 통해 삶의 의미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면 이는 삶의 의미를 다음 세대에 전가시키는 게 된다. 삶의 의미에 대한 해답을 제대로 주지 않거나, 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이런 행동이야말로 가장 나태한 것 아닌가? 아이들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남기는 건 아닐까? -p.121

중립적이기보다는 매우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시각에 치우쳐 있는 책이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에 대해서 세상은 낙관으로 훨씬 더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일하는 여성이 80%라고 해도 높은 자리에 오르는 여성은 불과 30%밖에 안 된다.
(... 중략) 현재 여성 인구 중 31%는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다. 일하는 여성들도 대부분 단순 서비스직, 공공 부서, 잘하면 교육직에 근무하고 있을 뿐이다. 비록 봉급은 적지만 엄마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은 여성들에게 은근히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일은 그저 그렇지만, 그 대신 아이들은 돌볼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는 생기잖아. 그런데 뭐가 불만이야?"
(... 중략) 물론 신세대 아빠들의 경우 아기 기저귀도 갈고 아기에게 우유도 먹인다. 하지만 결코 자신의 커리어를 희생하지는 않는다. 여기 그 증거가 있다. 남성들은 아빠가 되면 오히려 일에 가속도가 붙여 더욱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한다. 여성들과는 반대라 할 수 있다. 연구 자료에 따르면 '잘 나가는 남성들'은 주로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가장인 반면, 최고로 성공한 여성들은 주로 아이가 없는 여성이라고 한다. 두말할 필요 없이 아이는 남성의 커리어에 도움을 주지만, 여성의 커리어는 쌓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존재란 얘기다. -p.157

여성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서, 분야마다 많이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평상시에는 느끼지 못했다가도 어쩌다 툭툭 튀어나오는 일들이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질 수 있는 커리어에 내가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만 되고 한두사람 빠져도 커버되는 여유 있는 직장이 아닌 이상, 필요하면 동료들과 같이 야근하고 희생하고 협업하고 어느 누구 못지않게 내 몫을 하고 싶은데,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정시에 퇴근해서 아이를 돌보고, 아이가 아프면 집에 가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남편과 나 둘 중에 한 사람의 커리어를 포기해야 한다면.. 아마 내가 집에 가서 아이를 돌보고 싶으리라. 아이는 엄마의 손길을 더 필요로 할 테니까.


젊은이 중 87%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일은 별 볼일 없는 것들이다. 베이지 루저 세대(유럽 베이비붐 세대의 자식들을 일컫는말 ‘baby loser’)의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의 젊은이들보다 공부를 훨씬 더 많이 했지만 더욱 가난하다. 그래서 베이비 루저 세대는 실업 금고에 부담스러운 존재이며 잠재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확률도 있다.
(... 중략) 지금의 시스템은 특별한 문제가 없고 무난하거나 융통성이 있으며 조각난 현실을 잘 견디어내는 개인들을 필요로 한다. -p.176
부유한 선진국들은 현재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지만 에너지 총 사용량 중 3분의 2를 소비하고 있다. 사실 지구에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게 아니라 부유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지구상에 사는 탐욕스러운 인간들은 언제가 더 많은 것을 소비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게 합리적인 일일까? 아이들도 계속해서 점점 더 많은 소비를 하여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텐데 말인가? -p.179


역자의 말을 빌리자면, 작가의 메시지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이 모든 이유에 대한 선택의 문제이지 결함이 아니며, 불안정한 사회 상황에서 무조건 아이만 많이 나으라는 건 자신이나 아이를 위해서도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점점 더 각박하고 치열해지는 세상에 내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는 게 나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행복한 일일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아직도 찾고 있는 삶의 목적과 이유가 아이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서 아이가 나의 모든 것이 되는 것은 싫다. (이럴 때 보면 나는 자존감이 참 강한데 왜 자신감은 없을까 -_-) 낳고 나서 고민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계속 더 신중해진다.


오늘 마침 아가 옷을 들고 산후조리원에 친구 면회를 갔었는데, 복잡 미묘한 기분. 새해의 첫 독서인데 싱숭생숭해지네. 아기들은 참 예쁜데, 예쁜 장난감은 아니니까. 쉽게 생각할 수가 없다. 이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고 싶어질 때를 기다리고 있다. 내 의지 없이 그냥 그렇게 되는 건 어떤 것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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