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기와 함께하는 7월 7일의 기록
오늘 날짜를 보니 7월 7일이다. 칠월 칠석. 까마귀랑 까치 타고 견우랑 직녀가 만나는 날이 바로 오늘이라니. 그래서 어제도 오늘도 까치랑 까마귀를 많이 못 봤나? 그들 만나는 곳이 가깝지는 않을 테니 우리가 거창 떠나는 날 즈음해서 까마귀 및 까치들이 돌아오겠다. (혹시 음력 7월 7일..?!)
그렇지만 우리는 까(치+마귀) 대신 다른 것들을 아주 많이 보고 있다. 까맣고 긴 벌레와 파리들. 어제는 새벽에 거창에 도착해 하루 종일 몽롱한 상태로 청소만 한 것 같다. 화장실 청소, 방바닥 청소. 바닥에 동그랗게 말린 노래기를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비가 와서 더 크게 생긴 듯한 화장실 바닥 크랙 사이로 노래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보고 있자니 아찔했다. 원인을 해결하고자 어젯밤에는 임시방편으로 화장실 바닥 틈새에 테이프를 발랐다. 테이프 위에 박힌 웅양사과포도 협동조합이 바닥에도 새겨졌다. 잠에 들며 바랐다. 이들이 내 꿈에까지는 찾아오지 않기를.
정확히 일곱 시 사십 오분에 눈이 떠졌다. 왼편을 보니 노래기가 벽을 기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체념이다. 여덟 시에 맞추어 둔 휴대폰 알람을 끄려 15분을 기다렸다가 다시 잤다. 한 시간 간격으로 다시 깰 때마다 같은 자리를 확인했는데 그(노래기)는 언제나 다른 곳에 있었다. 11시 즈음. 완전히 일어났을 때는 오늘 처음으로 만난 노래기 이외의 다른 이들이 나란히 나란히 벽을 걷고 있었다. 하루 지나니 노래기 박멸에는 도가 터서 파리채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참, 어젯밤에는 벗과 함께 소공녀를 봤다. 영화에 보증금은 없고 월세는 십 인 방을 비추어주는 씬이 나오는데 정확히 그때 내 오른편에 앉은 벗이 흐어억 하는 소리를 내었다. 오른 벽을 보니 모기와 비슷하게 생긴 벌레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 방과 우리의 방이 오버랩되며 다시금 아득해졌다. 이건 뭐, 보증금 없음에 월세 십이 따로 없네. 이중창을 모두 완전히 닫았어야 했는데 하나만 닫아서 생긴 참사였다. 고개를 돌려 앞을 보니 주방 천장과 열어둔 창문 전체에 벌레가 붙어있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밝은 것은 우리 숙소의 창문뿐이었기에 그들은 모두 이곳으로 돌진한 것이다. 천장과 벽 모두에 골고루 에프킬라를 뿌리고 떨어진 그들을 청소했다. 끈질긴 아이들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이었는가.
이렇게 어제는 에프킬라와 어두운 나의 시력에 감사하는 하루였다. 흐릿하게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0에 수렴하는 나의 시력 덕분이리라. 여름, 장마철에 거창에 올 때는 흐릿한 안구와 함께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떠나며 기대했던 하루 일정은 이러했다. 새벽, 떠오르는 해와 함께 일어나 밭으로 간다. 땀을 잔뜩 흘리면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씻은 뒤 점심을 먹는다. 참, 일과 일 사이에는 새참도 거르지 않는다. 낮잠을 한 숨 때리고 비몽사몽 다시 밭으로 돌아가 오후 일을 한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저녁에는 약간 뻐근한 몸으로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고 달게 잠든다.
현실은 이러했다. 비, 비, 비. 띄엄띄엄 오는 비는 서울의 특징이었다. 이곳의 장마는 그 이름답게 무척 길다. 지붕을 타고 떨어지는 빗방울이 야속했다. 열심히 일을 도우며 노동력으로 우리가 이곳에서 머무는 삯을 마땅히 다하고 싶었으나 비가 와 아무것도 하고 있지 못하다. 일하느라 고생이려나 걱정하는 서울의 사람들에게 민망할 정도로 우리는 충분히 습하고 적절히 서늘한 이곳에서 충실히 밥을 먹고 있다. 9번의 식단을 어제 짜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것이 퍽이나 즐겁다. 찌고 있는 살이 걱정이지만. 가벼운 몸은 약간 물 건너간 듯하다.
그래도 중규형 덕분에 도보로는 갈 수 없는 카페와 마트에 들를 수 있었다. 어서 빨리 일을 하여 빚진 마음을 가벼이 하고 싶다.
지금은 비가 와서인지 방바닥에 물기가 가득이다. 주방과 붙은 거실만 멀쩡해서 이곳으로 침실을 옮겨야 할 것 같다. 우당탕탕 거창이다. 벗은 지금 소공녀가 다시 생각난다고 말하며 나를 지나쳤다. 서울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하루가 펼쳐지고 있다.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지내야지.
흐르는 빗물을 따라 논에서 탈출한 우렁이나 저보다 몇천 배는 더 큰 우리를 향해 집게발을 내미는 가재. 손발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개구리를 기억하며 피식 웃어보고, 밭에서 감으로 고구마를 찾듯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를 캐보려 한다.
내일은 어떤 하루가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어떤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우릴 찾아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