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부자경영

동굴 속 나를 만날때

부자경영 season 3_08

by 백 곤

칠흑 같은 어둠이 계속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고 끝없는 어둠 속에서 며칠을 헤메였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깊은 동굴 속에서 빛을 찾아 나온 것은 사흘이 되었을 때이다. 눈을 뜨고 싶지만 눈을 뜰 수가 없다. 동굴 밖은 엄청난 빛으로 가득 찬 세계였다.


동굴 안에서 눈을 감고 내가 먹은 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이 쑥이었는지, 아니면 마늘이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먹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존재하고 있을까?’


내가 어둠 속에서 줄기차게 생각했던 물음이었다.


2112.jpg?type=w1 어둠속에서 모든 형태는 뒤섞인다. ©wallpaperaccess.com


일주일 전 라섹 수술을 하였다. 그리고 나는 사흘간 깊은 어둠의 동굴 속에서 하루 24시간을 보냈다.

수술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각막상피를 희석된 알코올로 녹인 후 여러 번 차가운 정제수로 세척하고 레이저로 각막 표면을 깎아 굴절률을 낮추는 수술이었다.

간단한 수술이었다. 그러나 내 눈에 가해지는 수술의 모든 과정을 내 눈으로 지켜보는 것은 두려움과 공포의 순간이었다.


수술 후 사흘간 본다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깎여진 각막의 표피가 회복되어야 하니 눈을 뜰 수가 없다.

그렇게 나는 어둠의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 동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대기 편한 곳을 찾아 누워있거나 웅크리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편히 쉴 수 있으니 좋았겠네!’

전혀 잠을 잘 수가 없다. 고통이 계속되고 눈물이 내 눈덩이를 모두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선잠으로 수많은 꿈을 꾸었다. 시간을 알 수가 없었기에 늦은 밤과 새벽, 아침과 오후의 경계가 사라졌다. 오직 어둠과 나 자신만이 있었다.


167565.jpg?type=w1 수면위와 수면아래의 풍경들 중 어떤 것이 맞을지 아무도 모른다. ©wallpaperaccess.com


“나는 지금 어디에 존재하고 있을까?”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깊게 나 자신과 내 삶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내 인생의 모든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 존재에 대해 현실적인 성찰을 했다.


‘나는 내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열정에 대한 준비를 충분히 하고 있는가? 나는 이 시대를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기획하고 헤쳐나가며 살고 있는가? 자본은? 이 어둠이 끝나면 내가 주체적으로 내 삶과 꿈을 위한 부자경영을 잘 키워갈 수 있을까?’


어둠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곰과 호랑이가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을 먹으며 100일을 버티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깊은 어둠 속에서 자신을 다스렸던 것처럼 어둠과 고통은 그 자체로 내 삶에 깊은 성찰을 가져다주었다. 쓰고 매운 쑥과 마늘이 내 정신을 정화시키고 있었다.


345774.png?type=w1 어둠속에서 길을 찾는 것은 빛을 막고 어둠을 뚫고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wallpaperaccess.com


사흘이 지나자 눈의 상처가 아물고 고통이 사라졌다. 그러자 눈을 뜨고 싶은 욕구에 어둠이 답답해졌다. 그러나 당장 눈을 떠서 밝은 빛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루 더 어둠 속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이번에는 눈을 뜰 수 있지만, 눈을 뜨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동굴은 더는 나의 상처를 치료하고 마음을 정화하는 안식처가 아니었다. 빨리 벗어나야 하는 시련이었다. 그 옛날 호랑이가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동굴 밖으로 뛰쳐나간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답답했다. 그런데 이 답답함을 벗어난다고 하여 내가 바라는 진정한 자유를 맞이할 수 있을까? 그냥 밝음으로 나간다면 그저 동굴 속으로 들어오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1678111.jpg?type=w1 어둠속에서 눈을 뜨고 떠오르는 새로운 태양을 바라본다. ©wallpaperaccess.com


나는 변화해야 한다. 변화하여 내 삶이 바뀌어야 한다.


35년간 굴절된 안경 너머로 바라보던 세상을, 그 어떠한 장치 없이 직접 나 자신이 올곧이 마주해야 한다. 나는 기꺼이 하루 더 어둠의 동굴 속에 머물렀다. 갑갑함은 배가 되었지만, 이 순간이 지나 변화된 내 삶과 내 존재를 생각하며 어둠 속으로 들어가 나 자신을 만닜다.


그리고 질문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내일 새벽빛을 마주한 나는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글 | 두두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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