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두그린 Sep 01. 2020

하나이면서 셋인 생각들,
코수스의 의자

예술경영 시리즈 9 

20살의 미국 작가 조셉 코수스가 한 작품을 내 놓았다. 그것은 바로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 One and Three Chairs>이다. 1965년의 일이다. 이 작품은 개념미술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현재 미국 MOMA에 상설 전시되어 있다.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 1945-) ,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 One and Three Chairs>, 1965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는 보이는 바와 같이 가운데 의자와 왼편 의자의 사진, 오른 쪽 의자를 설명한 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어느 것이 작품일까? 누군가가 만든 실제 의자일까? 아니면 그 의자를 찍은 사진인가? (사진이 예술의 영역에 속하니 사진이 예술처럼 보인다.) 그도 아니면 의자를 가능하게 하는 태초의 의자를 지칭하는 글(개념)일까? 


문제를 어렵게 끌고 가지 말고 풀어보자. 실제 의자(사물), 사진(이미지), 설명 글(언어)이 이 작품의 전부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여러 질문들을 유발한다. 

미술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한 관객이 전시장을 찾았다.  

우선 관객들이 전시장에 와서 “응? 뭐가 작품이지?”, “어느 것이 작품이라는 거야 대체?”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을 보고 그냥 스쳐지나가진 않을 것이다.

그 다음은 “사진이 작품이네! 의자는 그냥 가져다 놓은 것이고, 의자의 정의는 사전 찾아보면 다 나오는 설명 글이고, 사진은 작가가 이 의자를 직접 찍은 것이니까? 사진이 바로 작품이네.”

세 번째 “현대미술은 참 어렵다니까! 뭐가 뭔지 모르겠어. 그런데 이 작품은 작품이 뭔지 생각하게 해주니 조금은 참신하네!”   


우리는 이 세 가지 질문을 통해 그가 예술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뭐가 작품인지 궁금해 하며, ‘예술작품이란 이러해야 한다’라고 정의를 내렸다. 둘째, ‘사진이 작품이다’라고 판단을 하였다. 세 번째, ‘신선하다’라고 느낌을 표현하였다. 

‘정의, 판단, 표현’ 이 세 가지가 바로 예술의 본질이다. 예술가들이 이 틀 속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또한 예술을 바라보는 관객이 이 틀을 통해 예술을 향유한다. 

작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의자라는 사물을 바라보고 스스로 정의를 내리고, 그럼 나는 어떻게 하면 되겠다고 판단을 한다. 그리고 그 판단에 맞게 표현(제작)하는 것이다. 

관객 또한 자신의 예술적 식견(나는 미술 몰라 라고 말 하더라도 어떤 것이 예술이라는 것은 이미 정의 내리고 있다. 잘 생긴 사람을 보고 나도 모르게 ‘와! 예술이다’라고 말하지 않는가!)으로 작품을 보고 좋은지 않 좋은지 판단을 한다. 그리고 이를 표현(감상)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이를 이데아의 개념으로 풀었다. 목수가 의자를 만드는데 있어 설계도가 필요한데 그 설계도가 바로 이데아(본질) 속 개념이며, 이를 모방하여 의자를 만든다. 그런데 이 의자를 그린 그림(사진)은 모방을 모방한 것(개념-실제의자)이기에 허상이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술에 대한 그의 비판 덕에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최초의 불씨를 던져주었다. 


다시 코수스의 의자로 돌아가 보자. 언어와 사물, 본질(개념)에 대해 질문을 던져주는 그의 작품은 무엇이 작품인지 아닌지를 가치판단을 떠나 관객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바로 하나이면서 셋을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의자에서 시작하지만 의자를 떠나 예술을, 그리고 의자에 얽힌 나의 실제 삶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의자를 벗어나 더 많은 현상들과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예술은 이러한 생각을 확장시켜 주기에 가치가 있다. 

"나는 어떤 의자를 가지고 있고, 가지길 원할까?" 오늘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글 | 빨간넥타이 두두그린




작가의 이전글 모방, 정신적 풍요로움을 위한 사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