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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그린 Sep 29. 2020

내 마음에 잠들어 있는 열망의 씨앗

예술경영 시리즈 10

초등학교 시절 난 미술을 참 좋아했다. 그림 그리고 만들기를 좋아했었는데 야외에서 풍경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대학교를 들어가기 위한 입시미술을 하기 전까지는 나는 미술학원을 단 한 번도 다닌 적이 없었다. 그냥 미술이 좋았다. 


한 번은 종이로 집도 만들고 빨래 줄에 걸린 옷도 만들었다. 그런데 풀이 없어 집을 입체적으로 붙일 수가 없었다. 시골생활이 넉넉하지 않아 풀을 사지 못했을 뿐더러 할아버지가 너무 엄격하시고 옛날 분이시라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환쟁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계셔서인지 그렇게 그림 그리고, 만들기에 소질이 많으셨던 아버지의 예술적 감각을 묵살하셨다. 


나는 풀 대신에 밥풀을 붙여 만들기를 완성하고 싶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이 또한 허락지 않으셨다. 신성한 곡식을 ‘환쟁이’들이 하는 만들기에 써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생활이 넉넉지가 않았기에 쌀 한 톨이 귀했다. 그런데 나는 정말 내가 만든 집을 완성하고 싶었다. 그 집은 학교 숙제도 아니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만들고 색칠하고 싶은 예술적 욕구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잔꾀를 부리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면서 일부러 밥을 흘렸다. 그리고 밥상 밑으로 떨어지는 밥을 왼손을 받아 손을 가볍게 오므렸다. 식사시간이 끝날 때까지 손을 오므리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그 밥알을 가지고 나왔다. 들키지 않으려고 어찌나 손을 오므렸는지 손이 찌릿찌릿했다. 나는 가지고 온 밥풀을 잘 펴고 눌러 종이 집을 하나씩 입체적으로 붙이기 시작했다. 종이로 나무도 만들고 울타리도 만들고, 색칠도 하고 그 날은 신나게 만들기를 하는 날이었다. 그렇게 나는 식사시간 밥알을 흘려 밥풀을 확보했고, 누나들도 동참하여 밥알을 보태주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른들이 그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냥 그렇게 봐주셨던 것이다. 커서 딱풀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 난 어릴 적 눌러 만든 하얀 밥알 풀이 많이 생각이 났다. 아마 그맘때였을 수도 있다. 내가 예술을 업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무의식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 모두는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들이 있다. 누군가는 운동을 좋아하고, 또 누군가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말하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걸 취미라 부른다. 학창시절 매학기 시작에 자기소개란에 항상 써야 하는 것이 취미였다.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학생들 ‘독서’라고 쓰고 유식한 척했다. 일 년에 책을 몇 권 읽었냐고 물어보면 손에 꼽혔다.


취미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정말 내가 좋아하고 그 활동을 꼭 해내고 싶은 열망이 내 마음 속에 불씨로 남아있는지가 중요하다. 초등학교 시절 간직했던 미술에 대한 열망의 불씨는 10년이 지나 고등학교 2학년 말에 피어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두 취미라 부르던 열정이라 부르던 간에 꼭 이루고 싶은 일들을 한두 개는 간직하고 있다. 살면서 일에 치여 못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못하고, “이 담에 여유가 생기면 꼭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미뤄둔 열망의 씨앗을 마음 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다. 


나는 예술에 대한 나의 열망을 해소하고 그 열정을 예술가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적 씨앗을 싹틔울 수 있도록 그들을 돕는 일들을 좋아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꼭 이루고 싶은 것들을 조금 더 쉽고 빨리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 나는 이를 예술경영이라 부른다. 그리고 예술가를 돕는 차원을 넘어서 보통 사람들, 예술적 소질이 없지만 예술적 열망을 간직한 일반의 사람들을 돕고 싶다.


소녀시절 그림그리기를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아이들 키우느라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한 꿈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 왼손에 움켜쥐었던 작은 밥알들을 모아 그들이 만드는 꿈을 응원하고, 우리가 ‘취미’라 부르는, 단지 내가 좋아하는 행동들을 유의미한 예술적 행위로 완성시키고 꿈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러한 활동을 예술경영이라 명명했다. 


글 | 빨간넥타이 두두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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