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_0331
뉴욕 전시 리뷰는 개인 아카이브를 위해 작성하는 지극히 개인적 취향이 담긴 단상이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전시들 중, 기록하고 싶은 작가나 전시를 한 달 단위로 메모하려고 한다.
1. Liz Larner: Dont put it back like it was
@Sculpture Center, January– March 28, 2022
올해 들어 가장 멋진, 순위에 꼽히는 전시였다. 리즈 라너의 1974년부터 2021년 사이의 작업들을 개성 강한 공간인 Sculpture Center에 빛나게 안착시켰다. 섬세하고 매혹적이며, 사랑스러우면서도 다소 신경질적이기도 한 작업들은 젠더와 포스트휴머니즘, 생태학적 담론을 확장시켜 온 라너의 관심사를 점을 연결하듯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는데, 수술용 거즈, 인조 속눈썹, 박테리아, 강철, 가죽, 도자기 등 다양한 재료를 예민하게 다루고 있어 공간을 걸어 다니는 내내 온몸의 감각이 새로이 깨어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특히나 지하 공간에 병치된 재료와 구성이 다른 세라믹과 금속 작업들은 작가의 내적인 초대를 받은 듯 시적인 리듬이 공간을 애워쌓고 있어, 작업을 보며 청각적 경험까지 할 수 있었다. 3월의 마법 같았던 전시.
2. Hugh Hayden: Brier Patch
@Madison Square Park, January 18 – May 1, 2022
뉴욕은 다양한 공공미술이 여러 곳에 전시되어 말을 걸어온다. 빌보드와 전광판에도 공원과 하이라인, 지하철, 버스정류장 등 눈길 닿는 어느 곳에 나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메디슨 스퀘어 공원에 철마다 바뀌는 작업들을 오랜 시간 바라보곤 한다. 지난번 전시됐었던 마야 린의 "Ghost Forest"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마흔아홉 그루의 백향목을 지켜보며 마음 한쪽이 무거웠었는데, 최근 전시되고 있는 휴 헤이든의 거칠고 성 나보이는 작업은 내가 지금까지 받은 미국 교육과 그 교육 시스템을 통과해 살아가는 내 주변 친구들을 생각하게 한다. 학교 책상 위로 무분별하게 뻗어있는 찔레나무의 가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한 때는 나를 보호해주는 가시였다.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해하는 가시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을까. 서로가 위를 향해 엉켜 뻗어있는 나뭇가지를 들여다보는 일은 편치 않다.
3. Nikita Gale: END OF SUBJECT
@52 Walker, January 21—March 26, 2022
뜨거운 공연이 끝난 후 아직은 남아있는 잔열의 무대를 보는 느낌이랄까. 스팟 조명은 불규칙하게 전시장의 이곳저곳을 비추고, 관람객은 자연스레 스팟이 비치는 곳으로 눈길이 향한다. 작가의 시선(권력)을 따라 나도 모르게 스팟에 비친 '그' 곳에 집중한다.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직사각형 패널 표면 위 애칭 된 특정 단어에 조명이 머물기도 하고, 스팟에 비친 공간의 여러 그림자가 또 다른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예전에 흥미롭게 읽은 제니 오델(Jenny Odell)의 책, “How to Do Nothing”에 나오는 “attention-holding architecture”를 연상케 했다. 우리의 행동이나 생각이 어떠한 사회 시스템, "attention economy"로 좌지우지되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는데, 게일의 쿨한 설치에서 작가 또한 이 책에 영감을 받은 게 아닌가 묻고 싶어 진다. 52 워커는 첫 전시보다 이번 전시가 더 흥미로웠고, 앞으로 전시될 흑인 여성 작가들의 작업이 기다려지는 전시였다.
4. Lynn Umlauf (1942 - 2022): Paintings from 1974 - 2022
@Zürcher Gallery, February 10th—March 30, 2022
뜻하지 않은 곳에서 진실한 작업을 보았을 때. 행복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르고 지냈던 시간이 속상해 작가에 대해 깊이 빠지는 시간이 한동안 계속된다. 개인적으로 평면 작업이 조각으로서 함께 비춰 보일 때, 그 작업의 팬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우리나라 작가 중에는 임충섭 작가 작업이 그렇다. 엄라우프의 회화 작업 또한 조각적인 요소가 함께 연상되는 가운데, 솔직하고, 담백하며, 거침없다. 그가 살아있었을 때 어떠했을지 작업을 오래 들여다보며 상상해보게 된다. 80세 생일을 앞두고 올해 2월 세상을 떠났기에, 더 이상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애석할 뿐이다. 세상에는 좋. 은. 작업을 지속해서 해나가는 여성 작가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며.. 귀와 눈뿐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열어둬야 한다.
5. Lyndon Barrois Jr.: Mirage Collar
@Artists Space, February 11 – April 23, 2022
아티스트 스페이스는 개인적인 이유로 사랑하는 장소 중 한 곳이다. 위트니의 필름/퍼포먼스 부서에서 일했던 제이 센더스가 이곳의 디렉터로 영입되며 전시와 프로그램의 결은 더욱 촘촘해졌는데, 현재 열리고 있는 린든 바로이스 주니어의 감각적인 개인전 역시 여러 지점에서 흥미로웠다. 바로이스 주니어는 영화의 역사에서 벌어졌던(지고 있는) 불법 복제, 이중 거래, 위조 등의 사례를 드로잉과 페인팅, 조각, 삽화 및 설치의 방식으로 풀어주고 있다. 전시장 전체를 근접거리 마술인 Three-card Monte 게임에 비유하여 사기꾼의 예술을 기념하는 듯 비꼬아 꾸며둔 그의 작업에서, 비단 영화만 사기꾼의 예술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피식 웃게 되었다. hey, Barrois Jr. CA has long celebrated the art of the con.
6. Greater New York
@MoMA PS1, through Aprl 18, 2022 Through Apr 18
PS1에서 다섯 번째 에디션으로 진행하고 있는 "Greater New York"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 중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뉴욕을 형성하는 사회적 정치적 생태학적인 지점을 예술가들의 꾸준한 작업을 통해 미술사적 맥락으로 선보이는 전시다. 47명의 작가들을 초대한 2021년 에디션은 COVID-19로 인해 한 해가 미뤄지긴 했지만 그만큼 더 기다려왔고 애틋해지기도 했다. PS1 건물 외벽에 적힌 "ARTISTS MAKE NEW YORK"이라고 써진 어구가 미술관을 들어가기 전 무척이나 상징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던 작가들(Shanzhai Lyric, Ahmed Morsi, Athena Latocha, Yuji Agematsu, Rosemary Mayer, Emilie Louis Gossiaux)뿐 아니라, 처음 알게 된 작가들(Stanley Wolukau-Wanambwa, E'wao Kagoshima) 도 있어 메모를 해가며 긴장감 있게 살펴봤다.
7. Faith Ringgold: American People
@ New Museum, February 17 – June 5, 2022
해야 할 말이, 하지만 미처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아 작업에 쉴 새 없이 풀어내고 있는 페이스 링골드의 회고전이다. 예술가이자 교사이기도 했으며 페미니스트 운동가로도 알려져 있는 링골드의 작업을 시대별로 살펴보며 흑인들의 애환이 구체적으로 그려진 작품에서 제임스 볼드윈의 "The Fire Next Time"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1960–70년대를 지나온 흑인 여성 예술가로서 링골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목소리를 내고, 꾸준히 작업활동을 해나가며, 당시의 미술사적 시도나 요소들을 자신의 스타일로 변형해 발표해왔다. 그의 투쟁과 열의에 작품 하나하나 그냥 지나쳐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