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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퐁 Oct 08. 2021

애매한 상태를 견디는 연습

내가 존못이라도 인생 안 망해용




 난 완벽하고 싶었다.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항상 이루지도 못할 목표를 세웠다. 그렇다고 목표를 향해 단단히 준비하지도 않았다. 늘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실패하면 스스로를 비난했다. 늘 자존감이 낮은 상태였다. ‘여우와 신 포도’ 우화처럼 무능의 탓을 외부로 돌리고 싶었던 걸까? 그게 뭐가 되었든 난 회피하고 싶었다. 회피의 끝은 자살이었지만 그마저도 난 실패하고 말았다. 빌어 처먹을.


 그 근원에는 수치심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당한 왕따, 가족의 비난, 한시적인 교우 관계 등. 사람들은 내게 수치심을 주었다. 그러니 나는 나를 긍정할 수 없었다. ‘내가 좋은 대학에 가면, 내가 엄청난 성과를 이루면, 내가 성공하면 사람들이 더 이상 날 수치스러워하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나 역시도 나를 깔보았다. ‘에? 네가 그걸 한다고? 안 돼 인마, 정신 차려.’ 내 자아상은 일그러지다 못해 와장창 깨져 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요즘 난 애매함을 견디는 연습을 하고 있다. 다른 말로 스스로 아마추어임을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영역에 서슴없이 발을 들인다. 나 같이 소심한 사람이 연기를 하고 글쓰기를 한다. ‘못해도 된다. 못해도 안 죽는다. 못해도 안 망한다. 무슨 실수를 해도 사람들은 네게 관심 없다.’ 이런 말들을 속으로 주문처럼 외쳤다.


 준비한 걸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까봐 우리는 긴장을 하고 움츠러든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상태가 오래 가면 그 무엇도 시도할 수 없다. 이게 내가 뭘 해도 금방 포기한 이유였다. 사실 지금 쓰는 글도 처음부터 다시 갈아엎고 싶은 욕구를 꾹꾹 누르고 있다. 서투르고 다시 읽기 민망하지만 쓴 김에 계속 쓰기로 했다. 뭐든 처음이라 어색하고 부족한 티가 나는 것이다. 하나의 글을 완성하면 내 글쓰기 실력이 다음 단계로 올라갈지도 모르겠다.


 아니, 실은 지금도 느끼고 있다. 첫 번째로 올린 글보다 최근에 올린 글들이 훨씬 낫다는 걸. 애매함을 견디는 방법은 어찌 되었든 계속하는 거라는 걸. 솔직히 내가 글을 계속 쓰는 이유는 글쓰기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인생을 배팅하지고 않았고, 책을 출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도 않는다. 그냥 쓴다. 주로 집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또 어떤 날은 노트북을 들고 밖에 나가서.


 예전의 나였으면 글을 쓰기 앞서 좋은 키보드를 알아봤을 것이다. 기계식 키보드를 사고 전문가의 글쓰기 강좌를 듣고 나서 겨우 몇 줄 쓰다 좌절했을 것이다. 그게 내 지난 나날들이었다. 큰 목표로 인해 눈은 높아졌지만 비루한 현실을 견디기 힘들었다. 무엇이든 제대로 시작하기 전에 포기하는 이유는 대체로 못하는 나를 견디지 못해서다.


 어느 분야든 타고난 사람은 존재한다. 밭에 똑같이 콩을 심어도 어떤 콩은 많이 자라고 어떤 콩은 적게 자란다. 그게 무엇이든 마찬가지다. 어느 분야든 타고난 사람은 있다. 나도 종종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타고난 글솜씨나 재치, 통찰력에 놀라곤 한다. 그렇다고 외적인 조건으로 남과 나를 비교하지는 말자. 우리가 무엇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하는 동기(motivation)와 이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가 무엇인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난 왜 이것을 하기로 마음먹었을까? 그것이 뭐든 간에 핵심적인 욕구나 원인은 존재한다. 스스로에게 당당해지고 싶어서 스피치를 배운다던지, 동물 보호를 위해 채식을 한다던지 등.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내가 OO를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내가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그것을 하는 게 맞는지. 설령 실수나 실패해도 뭐 어떤가. 욕구를 실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니까. 또 실패하더라도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 죽지 않는 한 다음 기회는 있다. 인생을 <오징어 게임>이라고 생각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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