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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inBoulot Jan 06. 2019

New Year’s Resolution 2019

어느 회사원의 새해결심


영어 선생님으로부터 'New year’s resolution'이라는 표현을 처음 들었다. '새해 결심'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글로벌리 작심삼일의 의미가 덤이다. 계획은 즐겁게 세우지만 실행은 하기 싫어하는 나는, 에잇 그렇다면 실행을 하지 않으면 계획이 아까울 정도로, 매우 공을 들여 계획하기로 했다. 왜 결심을 하는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하면 아주 조그마한 행동들로 분해하여 구체화할지 고민하면서. 더하여 우선 내 상태를 적나라하게 직시했다면 좋았겠지만, 거기까지는 용기가 없다. 이 글을 브런치 발행을 위해 수정하는 지금, 지켜지고 있는 것은 없지만, 장기적인 가이드니까 오히려 삼일 후부터 시도해볼까 한다.

 

규율잡힌 생활

이 내가 “Discipline”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꼰대화의 중요한 단계를 밟은 것이겠지만, 욕망을 생명력으로 커버칠 수 없는 나이가 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 규율은 패턴이니까. 잘 만들어진 생활의 패턴은, 하나하나의 행동과 의사결정이 요구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고 효율화한다 . 이후의 새해결심을 작심삼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욕망의 구체화를 위해 요구하는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찍 일어나고 출근하기

일찍 일어나는 것이 출발이다. 24시간에서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정량의 시간을 분할하고 정렬하는 것을 생활계획이라고 한다. 계획상의 활동들을 굳이 아침에 배정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나는 회사원이다".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조금이나마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업무에 사용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고, 이는 칼퇴를 전제해야 하며, 칼퇴는 그만큼의 성과를 요구하고, 성과는 그만큼의 업무시간을 요구한다. 즉,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얼리버드형 인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얼리버드형 인간이 절대 아닌 것도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기상은 7시. 그리고 출근은 9시 이전.


자세 바르게 하기

나를 괴롭히는 알러지와 비염조차 자세와 관련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세만 바르게 해도 건강과 스테미너의 나이 대비 지속가능성을 상당 수준 확보할 수 있다. 이는 망가지기 쉬운 습관이므로 지속적인 모니터링 혹은 경고를 받을 필요가 있다. 알림 앱을 활용해보자.


운동하기

짧은 시간 스트레칭만 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항상 잘 나가다 몇 달동안 스트레칭도 잊어버리는 이유는, 점점 운동 강도를 더해가며 이 행위를 부담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일이긴 한데, 생각보다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 욕심내지 말고 아침에 스트레칭부터 시작하자.


야식엔 맥주 500cc

모든 것의 출발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인데, 그 출발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은 전날에 최대한 체력을 보존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기 전에 술먹는 습관을 이제 슬슬 와해시킬 필요가 있다. 늦게 잠들고, 수면의 질은 떨어지며, 몸에 무리가 간다. 그럼에도 이 행위를 없었던 것처럼 외면하기는 불가능하다. 아내와 나누는 이 야식 시간의 행복은, 심지어 삶이라는 찐빵의 앙꼬이기도 하다. 다만 맥주는 500cc 이하로, 취침은 최소 12시 전으로 하고, 단지 같이 먹방 - 먹으면서 먹는 방송을 보다니 - 이나 예능 VOD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의 존재 이유에 합당하도록 그날 있었던 일과 그날 스쳐간 생각에 대해 많이 나누자.


작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생각보다 지키기 쉽지 않다. 작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선의라고는 해도 결국 자기의 욕심이며, 거짓말은 타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세계에 왜곡을 가져온다. 사람들이 인식하는 세계가 결국 내가 사는 세계를 구성한다고 생각하면, 점점 쌓이는 별것 아닌 왜곡들이 결국 세계를 매우 불안하게 만든다. 택시비 같은 사소한 회사 비용, 혹은 포스트잇 같은 비품을 남용하는 행동들도 마찬가지이다. 작더라도 도둑질이며, 이를 들키지 않고 일반적인 상태로 여기게 만드려면 거짓말이 필요하다. 매일 아침 일기를 쓰면서 어제의 거짓말들을 반성하도록 하자.


다시 배우고 익히기

유능함의 욕망이다. 특정한 영역에 완전히 매혹되거나,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닌 나에게, 아래의 모든 것들은 넓고 얕게 훑을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영역에 일정부분의 유능함을 원하니까 말이다.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각 영역이 의미를 갖는 수준의 유능함을 얻을 수 없다. 나이도 들어서, 역량에 비해 기준이 높을 수밖에 없으니 매번 실망만 하게 마련. 그러니 매년 빠짐없이 새해 결심에 리스팅되면서도 어느 하나 지속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오히려 지금에야 이런 성찰을 하는 것이 이상하지.

그럼에도 올해도 “Same old story”를 이어가는 이유는, 이들이 내 유능함을 더해주지는 못하겠지만, 내 삶의 경이를 조금 더 풍요롭게 해준다는 것이다. 단지 기예 자체에서의 경이뿐만 아니라, 기예에 쓰이는 신기한 도구들 - 예를 들면 맥이나 아이패드 - 을 활용하는 경이도 있다. 보다 멀리 있는 목표를 되새기자면, 남은 삶에서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내 성향상 이 결심의 단기 목적은 ‘기초적인 기예’과 ‘도구의 활용 지식’, ‘작은 완성품의 생산’이다. 스킬의 고도화가 아니며, 도구의 전문성도 아니고, 완성품의 품질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 방법은 스킬과 도구의 아주 작지만 꾸준한 진도, Quick-win 과제일 것이다.


외국어

일주일에 한 번 1:1 영어 수업을 듣고 있다. 반 년 정도 되었는데 최근 피드백에 의하면, 아주 느리지만 영어 말하기와 듣기가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한다. 교재를 두고 하는 대화가 아니므로, 보다 틀이 잡힌 영어가 개발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대화’ 자체의 숙련, 즉 “묻고 답하는” 대화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예상치 못한 보상이 있었다. 내게는, 단지 영어 ‘실력’의 증대보다 훨씬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모든 외국어 학습이 목적하고 있는 것은 사람 간의 소통이잖아.

그러나 쓸데 없는 욕심으로 붙잡아두고 있는 불어, 독어, 이태리어, 서반어의 방향성은 분명 소통과는 무관하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한두달 하다보니 각 언어들의 고유한 합리성, 지칭하는 대상의 미묘한 차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물에 대해 인식하고 그 인식을 교환하는 방식에 얼마나 다양한 반짝임이 있는지. 일단 듀오링고의 사이클 완성을 목표로 두되, 욕심내지 말고 아침 지하철에서 매일 두세 클래스씩 하는 것을 목표로 삼자. 그것이 완료될 때, 예를 들어 오페라 번역 같은 흥미있고 접근가능한, 활용 측면의 목표를 정해야 할 듯하다.


음악

아내의 전공인 음악은, 우리가 노부부가 되어 함께 즐길 수 있는 많은 것 중 매우 구체적인 상상이 가능한 기예다. 함께 곡을 만든다든지, 함께 연주한다든지, 함께 곡에 대해 깊이 논의한다든지 말이다. 이론과 실기, 그리고 도구적인 측면을 모두 익히는 것이 필요하고, 또 그러하고 싶다. 다행인 점은, 이제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 그저 ‘즐길 수 있는’ 수준으로 훈련하기 위해서 직접적인 대인 코칭이 아니더라도 많은 정보와 앱들이 구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다행이 아닌 점은, 홀로 집중해야 하는 시간을 꾸준히 요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소리를 내야 하고, 건반을 두드려야 하는 등, 지하철에서 잠깐 연습하거나 회사에서 몰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다, 그것이 가능한 외국어마냥 시간이 지나면 훈련한 수준이 금방 사라진다. 자, 하루에 한 시간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어느정도 숙련이 없이는 아주 작은 “Quick-win” 과제도 불가하다는 것이다. 방법이 없다. 매일 시간을 내서 억지로 해야 한다. 매일은 못하더라도 평일에 일찍 퇴근하면 반드시 이론(일단 힌데미트의 기초연습부터), 피아노(앱)를 총 한시간씩 훈련하자. 다만 프로그램과 같은 도구는 음악적 역량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용법을 익히는 것이므로, 매일 훈련할 필요가 없다. 로직프로는 주말에 유튜브 등을 보며 기능을 익히고, 기능을 모두 익혔다면 작은 “Quick-win” - 카피나 만들기 - 을 수행하자


미술

무엇인가를 그리는 행위는 언어 유사품을 생산하는 의미를 넘어, 언어에 의해 가로막힌 시각정보들을 새롭게 인식하는 경의를 준다. 익숙한 사물을 다시 보게 되고, 늘 눈앞에 있었지만 미처 보지 못했던 세상에 새삼 놀라게 된다. 개념과 범주화에 중독된 나에게는 큰 해독작용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이 행위를 지속하기 어려웠는데, 드로잉 역시 홀로 집중해야 하는 시간을 요구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다행이라면, 이 기예는 언어보다는 몸짓에 가까워서, 음악과 달리 잊혀지는 정도가 현저히 낮다. 즉,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 시간을 내어 한두시간 그리는 것도 괜찮다는 것이다. 물론 빠르게 역량이 올라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1년에 52주라면, 52시간의 훈련은 하는 셈이니. 종이에 한 번 그리고, 또 아이패드로도 한 번 그리자. 무엇을 그릴 것이냐고? 올해의 Quick-win 과제는 우리 괭이들이다. 사실적으로도 그리며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고, 캐릭터로도 만들어 영원히 기억해두자.

이에 더해, 파이널컷도 주말에 기능을 익혀보자. 이 역시 기능을 먼저 익히고 작은 “Quick-win”을 기획해서 만들어보면 어떨까. 여행동영상 편집이라든지, 우리집 괭에 대한 다큐멘터리라든지 말이다.


개발

컴퓨터는 소통가능한 대상이다. 일을 시키기 위해서는 말을 해야 했으니. 프로그래밍은 대화의 방식이고, 실제로 우리는 그 도구를 언어(Language)라고 부른다. 전문가들은 옛날에 비해 이렇게 쉬워지다니 감탄하면서, 이제 모두가 접근 가능하다고 호들갑을 떨고, 성미급한 어머니들은 초등학교 아이들을 코딩 학원에 보낸다. 그렇지만 - 과거에 ‘컴퓨터학원’을 다녔던 - 지금의 40대 문송한 아저씨에게, 아무리 삼빡한 통합 개발환경과 라이브러리가 제공된다고 해도, 상품화는 고사하고 타인이 ‘이용가능한 수준’의 무엇인가를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여전히 이 영역의 유능함의 꼬리라도 좇는 이유는, 그 무궁한 가능성의 한 줄기를 놓고싶지 않아서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영어가 아닌 유럽어 숙련과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방식을 넓혀주기도 하는데, 단순한 반복행위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현상을 숫자로 변환하여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은 문송인에게는 신세계에 가깝다. 문제는 이 역시 언어인지라, 손을 놓으면 금방 기억에서 사라진다. 게다가 숙련하기 위해서는 꽤나 집중해서 시간을 들여야 한다. 반면 다행스럽게도, 이는 회사에서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내서 숙련이 가능하다. 특히 모니터를 여러개 활용할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만약 업무와 관련되어 간단한 시뮬레이션에 활용할 수 있는 과제가 있다면 더할나위 없다.

단지 프로그래밍뿐 아니라, 데이터 사이언스에 속하는 각종 지식들은 익혀둘 필요가 있다. 세상을 보는 중요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내어 Swift로 앱 만들기, 웹서비스 개발 관련 지식, 데이터사이언스 관련 온라인 수업을 위주로 들어보자.


세상과 더 연결되기

불혹이 될때까지,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나의 성장의 척도는 언제나 타인과의 관계맺기였다. 보다 더 영향을 미치고, 보다 더 의지하는, 이른바 ‘상호의존’의 태도를 만들기. 사실 이 부분에서는 서른 살까지 요령부득인채로 남아있다가, 아내를 만나고 질적인 도약을 시작했다. 그대가 아니면 이렇게 오지도 못했을 텐데. 새삼 나의 구원자, 신의 현현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어쨌든 더 노력할 일이다. 뿌린 씨앗이 계속 자라야 하지 않겠는가.


질문하기

질문은 단지 대화를 이끌어가는 수단이 아니다. 상대에게 갖는 관심의 표현이다. 나는 이전에, 상대에 대해 관심이 있어야 의미있는 질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형식이 실질을 규정할 수 있듯이, 질문하는 행위 자체가 상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또 중요한 점은, 질문을 통해서만 대화 당사자들이 공유하는 관심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쪽이 관심이 없는 이야기를 내리 떠드는 것은 얼마나 서글픈 광경인가. 다만 익숙함으로 인하여 놓치지 않도록, 그 우선순위의 가장 위에 있는 상대는 아내임을 잊지 말자. 대화의 장면에서 내가 얼마나 상대에게 물었는지, 어떤 것을 물었는지 매일 아침 일기장에 복기해보자.


도움청하기

상대방에게 빚을 지지 않겠다는 의지는 상대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욕망이다. 자아의 권력적 크기 - 영향력의 주도권 - 를 유지하거나, 윤리적 정체성 - 영향력의 방어권 - 을 확보하기 위한 자유다. 다만 전자는 그것이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이상, 도움을 받고 주는 관계에서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의존적인 것이 아니라면 상호의존적인 것이 더 큰 유능함과 영향력을 확장시킨다 자유시장의 이점이 규모와 범위의 경제 확보가 아니던가. 물론 요청한 도움에 따라 상대가 갖는 내 이미지가 손상 - 이 무능한 녀석! - 될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을 지킬 수 없다면 가장 내 행동들과 가깝고, 보다 모두에게 효과적인 것들, 공동체에서 핵심적인 규범들만을 유지하고, 나머지는 포기하는 것이 낫다.


베풀기

아마 도움청하기와 대칭적인 것이리라. 공통된 축이 있는데, 그것은 상대와의 연결성이다. 연결/관계는 그 자체 지속적 불확실성과 불가역성을 가져오므로, 애초에 연결을 희석시켜 리스크 관리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최소화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쪽 방면의 유능함이 없기 때문이다. 즉, 연결/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인, 관심을 갖고 관심을 ‘나누는’ 방법을 모른다고 미리 겁먹는다. 별 수 없다. 질문하고, 부탁하자. 모든 사람에게 선물하고, 인사하고, 연락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특정 날들 - 연말연초, 명절 등 - 에는 그 핑계로 소중한 사람들에게 - 가족, 친구, 동료 - 간단한 인사와 선물을 보내자.


모모쇼즈 놀아주기

모모와 쇼즈, 우리 괭이, 우리 가족, 우리 자식,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가련한 생명체들. 그러면서도 그들이 가진 시간은 우리에 비해 턱없이 짧다.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맛있는 밥, 신선한 물, 따뜻하고 안전한 공간,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온기의 나눔, 그리고 흥미로운 장난감들이다. 한 주에 세번, 하루 삼십 분은 그들에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글을 발행하기/멘토링

자의식은 부끄러웠고  꼰대질은 두렵다. 인터넷은 현대적인 버전의 대타자가 머무는 장소이며, 수많은 자의식들이 대타자의 관심을 욕망하며 그 공간에 쌓여 있다. 그러나 이를 보편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영혼이 정화되었거나, 그 매체를 다루는 글이나 사진 등의 기술이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다면, 일기는 일기장에 써야 한다. 생산한 기표를 세계에 내보내는 것은 일기장과는 달리 타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위이므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른바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정보도 없는 글은 공해고, 자극적인데다 왜곡된 생각들은 독이다.

양쪽 다 해당될 수 있는 꼰대의 특징은, 자신에 대한 얕은 성찰과 세상에 대한 좁은 관찰에도 불구하고, 무책임하게 보편을 외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심스러운 원칙은 이렇다. “성찰과 관찰 범위 바깥에서 보편을 단정하지 않는다.” 인식과 윤리에서의 보편은, 내용이라기보다는 형식이며, 결과라기보다는 지향이다. 책임있는 꼰대질은 판단하되 한계를 아는 것이다. 이 글에 걸린 책임을 내가 얼마나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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