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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교주 Jul 05. 2021

서러움의 연체료

안 좋은 기억이 오래 남는 이유

상담을 시작하고 초반에는 상담의 방향, 내 안의 가장 고픈 이야기를 꺼내놓느라 몇회기가 지났고,

비로소 어느날인가 엄마 이야기가 튀어 나왔다.


많은 심리학자들, 이론들이 있다지만 내가 대학교시절 교양시간 배운 심리학에서도 그렇고,

아직까지도 프로이트의 이론이 가장 지배적인걸로 아는데,

'아무래도 유년시절 부모와 가정환경이 현재의 나를 만든다'는 이론이 사실 이론을 넘어 경험상으로도 가장 

납득이 가고 이유를 부여하기 좋은 설 이긴 한 것 같다.


엄마와 딸.


어려서 부터 엄마와 나는 기질적으로 맞지 않았다.


전형적인 이과 머리의 엄마와 전형적인 문과 감성의 나.

라이프 스타일도, 일처리 순서도, 감정의 표현도, 성격도 모두 다른데, 

그저 어려서 엄마라는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나는 내가 왜 도움이 필요해서 떼쓰고 우는지 모르는 엄마에게

많은 서운함과 미움이 있었겠지.

지금도 나이가 마흔줄 먹어서 종종 그런다.

"엄마 미워."


아무튼, 상담시간 첫 꺼내놓은 엄마와의 안 훈훈한 이야기는 대략 몇년전,

엄마의 물건을 필요에 의해 빌려썼고,

엄마가 아끼는 물건임을 알기에 사용하는 내내 잃어버리지 않으려 신경을 쓰며 감수하였고,

일을 마치고 나는 분명 제자리에 두었고, 

며칠 후 엄마는 그 엄마의 물건이 없어졌다며 잃어버렸으면 솔직히 말하라고 다그쳤다.

분명 제자리에 둔 나는 잃어버리지 않았고 반박했으나,

엄마는 이미 내가 잃어버린걸로 굳게 믿고 내 뒤에 대고 갖은 흉을 보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종종 엄마는 소중히 여기는 물건을 잘 둔다고 둔것이 본인도 못찾는 곳에 꽁꽁 숨겨버리는걸 알기에 분명 머잖아 찾겠지 싶어 참았는데 점점 엄마의 말이 지나친 거였다.

"잃어버렸으면 잃어버린거지 왜 거짓말을 하니? 솔직하질 못해 왜? 정말 이해가 안가는 애야, 정말 맘에 안들어,너 정말 ㅈㅅ 없어!!"

참다 참다 나도 열이 받아 여름이라 온 창과 문을 열어놓은 집에서 소리를 질러버렸다.

"난 분명 제자리 뒀다고!!! 엄마가 되서 딸을 못 믿고 거짓말 하는 사람 취급하고 뭐하는거야!!!! ㅅㅂ "


나도 뭐 잘한 행동은 아닌건 알지만 오죽하면 엄마한테 그랬을까.


어쨋든 며칠 후 정말 엄마는 '이게 왜 여기있지?' 라며 어디 주머니에서 그 물건을 찾아냈다.

그런데 나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엄마에게 조심스레 그때 그 일 기억 나냐며 대화를 권유하셨다.

특히 엄마가 지나간 일에 대해 회피를 하는지, 직면하여 대화를 하는지, 말을 듣는지가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물론 해봤는데 엄마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계신다.


나중에 상담이 거듭되면서 떠오른 일이었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중학생 무렵, 엄마랑 볼일이 있어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외출 후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엄마가 빨간신호를 착각해 좌회전을 하고,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쨋든 어디서 직진해 오던 차와 차사고가 났었다.

충격으로 어디 아파트 담벼락에 차가 부딪혔고,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차는 조수석 쪽 범퍼가 더 많이 찌그러져 있었다.

근데 그런 사고가 나고 엄마가 제일 처음 한 말은 

"내가 잘못했니?" 였다.


그날은 나도 경황이 없어 경찰차와 보험사 아저씨랑 어수선 했던 하루가 지났고,

다음날 학교에 가 친구들에게 어젯밤 사고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들이 "괜찮아? 다친데없어?", "병원은 가봤어?"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그제서야 알았다.

엄마는 나의 안부나 안전을 묻지 않았었다는 걸.


물론 엄마도 경황이 없고 당시 집이 여유롭지 않아 보험료나 합의금 등이 걱정이 되는 건 현실이긴 하지만 날이다.




뭐 이후에도 엄마, 하면 떠오르는 서럽고 화나고 밉고 이런 감정과 에피소드들이 많이 떠올랐지만 

결국은 생각해보니 이런 감정이 5년 ,십년, 이십년이 지나도 생각이 나고 그때의 감정으로 다시 격앙되는 걸 보면 감정이란 시간이 해결해 주는 문제가 아닌거였다.

마치 오래 연체된 고지서처럼 어쨋든 내 맘에 좋든 나쁘든 스크레치가 생겼고, 시간이 지나 그때의 상황 입장차가 이해는 갈 수 있겠지만 그때의 내 마음은 이미 슬펐고, 놀랐고, 화났고, 아팠다는 게 중요한 거였다.


굼벵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고,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 인 줄 알게 된댔나. ㅎㅎㅎㅎ


아직 나는 엄마한테서 발생한 그 서운함의 연체료 고지서를 엄마에게 다 청구하지는 못했지만 

요새는 그나마 새로 발생하는 감정에 대해서는 엄마에게 통보를 하는 편이기는 하다.

가족이라는 사회적 단위가 참 어렵고도 조심스럽고, 엄마라는 존재가 어른이기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서 쉬이 하지는 못하지만,

싫으면 싫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일단 나도 내 맘이 그러면 그렇게 말은 해야지.

상대가 납득을 하든 못하든 이해하든 몰라주든 그건 일단 차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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