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에 합산되어 나오는 총 경력은 12년이 넘는데 경력사항 조목조목 보면 그렇지가 않다.
4대보험도 없이 공식적으론 백수,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센터 등을 전전하며 미술강사로, 간혹 그림 일러스트레이션 의뢰가 들어오면 그림그리는 작가로, 그렇게 3.3%의 소득세를 내며 프리랜서 생활이 10년.
미술교습소 운영한다고 원장이랍시고 시작했다가 1년반 만에 정리한 사업.
그렇다면 공식적인 직장인으로는, 대학 졸업하고 첫 취업했던 그마저도 폐업해서 1년도 체 못 채워 퇴사해야했던 (지금 생각하니 폐업을 앞두고 퇴사를 종용한 이유가 퇴직금을 못 줄 상황이라 그랬었나보다... 심지어 당일해고였다. 그냥 다음날 부터 오지 말라는.. 요즘이야 노동법이며 알려지기도 구체적이기도 하지만 당시엔 나도 무지했지만 그냥 회사가 그러라면 그래야는 줄 알았던...) 10개월 경력에, 미술교습소 운영을 접고 알바비라도 벌라고 아빠 사업장에 직원으로 등록해 투잡하던 1년. 이후 30대 중반에 겨우 취직해서 2년 꾸역꾸역 채우고 회사 돌아가는 상황이나 업무특성 상 건강이 망가지는게 느껴져 퇴사한 2년 경력.
내 4대보험 가입이력을 보면 그냥 공식경력은 4년 남짓이다.
나이가 40이 다 되가는데 사회생활 4년 밖에 안 한걸로 보여진다는 말이다.
Q.나 같아도 파란만장하고 직업을 자주 바꾸고 정착하지 못한 미혼의 거의 마흔여성을 직원으로 뽑을 수 있을까?
A.거의 모험이라고 봐야지. 리스크가 너무 많다.
그런데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위에 언급한 미술교습소를 운영하는 동안 '자영업자를 위한 내일배움카드'를 지원받아 국비로 무얼 배울 수 있었는데, 나는 어려서부터 동경하던 건축에 쓸모있는 Auto Cad를 배웠다.
그냥 배우고싶었다. 아빠가 건축사이시고, 동생도 건축설계회사를 다녀 그런지, 어려서부터 도면은 내 스케치북이고 이면지였다.
그리고 미술교습소를 정리하고 매일같이 구직 사이트를 뒤질때마다 집 가까운 곳에 구인 중 인 건축모형 회사가 있었다.
미술을 전공한 나는 색, 만들기, 조형이 특기이자 장기이고, 집안 문화가 도면이 굴려다녀 그런지 왠지 일 할 수 있을것 같고 날 고용해 줄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 취직을 했다.
일은, 재미가 있었다.
배우는걸 좋아하는 나는 공구를 다루는것도 몸은 많이 힘들어도 심지어 재밌었다. (맥가이버 따라 집에 드라이버란 드라이버는 다 망가트린건 비밀... )
그런데 점점 몸과 마음에 병이 생겨났다. 알러지 체질인 나는 직업 특성상 먼지와 가루, 화학약품이 날리는 작업실에만 있으면 두드러기에 두통에 약 없이는 출근을 할 수가 없었다.
마침 코로나까지 터져서 경기가 악화되자 사장님은 부장님들을 쪼아대기 시작했고, 그 악의 에너지는 과장-대리-사원들에게로 내리저주?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좀 더 멋진 일을 하고 싶었다.
모형회사에서 일하며 알게된 알게 된 업종이었는데
디자인과 설계를 접목한 그 분야가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고, 디자인을 전공하고 집안에 설계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건 나를 위한 직업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지금 이 회사는 더 나이가 들면 신체적 한계 때문에라도 못 다닐것 같으니 이직을 위해, 혹시 모를 쓸모를 위해 회사를 다니며 '건축기사' 자격증을 준비했고, 중학교때 수학 16점 맞은 실력으로 합격도 했다. (딴에는 각고의 노력을 했다는 뜻이다.)
결국 이직을 결심하고 연차, 반차, 병원 핑계 등을 대며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생각보다 시간은 길어졌고, 과정 중 퇴사를 해버렸다. 차라리 이직하는데에 집중하자 싶었다.
이제 퇴사 해 버린거 남는건 시간이고 나는 '이 직업'에 대해 관련된 경력이 없기도 하고 명색이 시각디자인 전공인데 전공 관련 자격증이 없어 '컬러리스트'를 독학했다.
그리고 시험만큼 노력을 배신하는건 없는지 합격했다. (다시한번 자랑하는데 독학으로 따내기 힘든게 컬러리스트라고 한다.)
면접보자는 회사는 내 기대보다 많았는데 같이 일하자는 회사가 없었다.
[대부분 같이 못하겠는 솔직한 이유를 말씀 해주셨는데 가장 큰 이유는 여자라서(미혼인것도 이유, 기혼인것도 이유), 다음은 이 분야의 일은 신입인데 나이는 그렇지 못해서, 마지막으로 이력서상 직업이 자꾸 바뀌는데 우리회사에서도 금방 나갈까봐. ] 서 였다.
그래, 두세번까지는 나같아도 이런 리스크가 크고 뭐가 증빙된게 없는 사람을 누가 쉬이 고용하기 쉽겠어? 라며 스스로 이해도 해보고 다독여도 해봤지만 구직의 시간이 길어야 2달 생각했던 것이 3달,4달, 5달 째가 되어갔다.
아직도 부모님 집에 얹혀 살고, 의지하며 등 긁어 줄 남편도 없고, 그럼 좀 멋드러지게 골드미스라도 되던가 그것도 못하지, 통장에 잔고가 비는 만큼 내 마음의 여유와 자존심은 이미 마이너스 통장이었다.
당근마켓이라고 동네를 바운더리로 가까운 거리에서 신뢰도는 높이고 편리함과 친근성을 특징으로 중고거래를 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이 있다.
'중고 신입 있어요. 가격은 에눌해 드릴 수 있어요.'
구직 사이트에 올려져 있는 내 이력서를 볼때마다 중고마켓에 올려져 있는 상품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중고여도 너무 오래된 중고, 그것도 여러사람 손을 타 결국은 기부마켓에 온 인형같았다...
나름 그래도 뭘 해야겠다 목표를 정했고, 그 목표를 위해 자격증이며 포트폴리오며 준비를 했는데 반복되는 구직 실패는 나를 참 비참하게 만들었다.